부견 모용수에 막힌 환온 - 동진 간문제 즉위 [37화]
- 한중일 역사/위진남북조 100화
- 2019. 9. 23.
이전에, 전연의 황제 모용위는 모용수에게 영격을 맡기는 한편, 전진 부견에 호뢰 이서의 땅을 베어주는 조건으로 원군을 요청했다.
[위진남북조] 전진 황제 부견
전진의 대다수 중신이 반대하는 와중에 왕맹만은 원군 파병을 부견에게 강력히 주장한다.
"전연(연나라)이 비록 강하다고는 하나 환온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 환온이 패주한 후 전연(연나라)의 원기가 크게 상해 있을 때 기회를 틈타 연나라를 도모할 만합니다."
전진 황제 부견은 이를 받아들여 2만 병사로 전연과 모용수의 군대를 돕는다.
당시 환온은 우물쭈물하며 사태를 관망했는데 그는 북벌을 나왔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계속 동진 조정의 내부 동태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황위를 찬탈할 생각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사령관이 이러니 동진의 북벌군이 제대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애초에 치초가 우려했던 대로 새로 뚫은 수로가 다시 말라 군량 수송에 차질이 생겼고 10월엔 전연의 장수 이규가 육로 운송로마저 차단한다.
이후 모용주의 기습을 받아 패전하는 등 전황이 급속도로 불리해지자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환온은 치중과 무기를 버리고 배를 불태우며 급히 육로로 도주한다. 이때 전연 모용수는 아직 동진 군대의 힘이 남아있다고 판단해 성급히 공격하지 않고 미리 앞질러 매복한다.
[위진남북조] 동진 환온 3차 북벌 후 퇴각로, 전연 모용수와 전진 부견 추격로
밤낮없이 퇴각하며 피로가 누적된 틈을 타 급습하기로 한 것이다. 동진의 군사가 양읍에 도착했을 때, 앞으론 동간에 매복하던 범양왕 모용덕의 복병, 뒤로는 모용수의 복병이 나타난다.
앞뒤에서 적을 맞은 동진 군사 중 3만이 이때 목숨을 잃었고, 초군으로 도주한 패잔병들마저 구지의 급습을 받아 1만 명 이상이 죽었다.
환온의 3차 북벌은 대실패로 끝났다. 전연 모용수와 전진 부견, 두 영웅이 힘을 합치니 그도 적수가 되질 못했다.
환온의 명성에 금이 갔고 원망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모용수와 부견에게 패했지만, 환온은 3차 북벌의 실패를 원진에게 물었다. 수로를 열지 않은 까닭에 물길로 철군하는 계책이 무산되었으니 엄히 문책할 것을 황제에게 요구했다.
당연히 원진은 대로하며 수춘성을 들어 전연(모용수의 연나라)에 투항한다. 환온은 근 1년의 세월을 들여 태화 6년(371)에 간신히 수춘성을 수복했고 병사한 원진 대신 그의 아들 원근과 측근들의 목을 베었다.
수춘성을 회복한 후 환온은 책사 치초에게 찬위의 시기로선 적절한지를 물었으나 북벌의 실패로 시기가 좋지 않다는 대답을 듣는다. 이에 그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위진남북조] 동진 폐제 사마혁, 환온에게 쫓겨남
지금 자신이 황제가 될 수 없다면, 황제 자리를 물려줄 새로운 황제를 앉히려 했다. 환온은 건강한 남성인 사마혁이 사실은 성불구자이며, 그의 아들 3명은 측근인 상룡, 계호, 주령보의 아들이라는 거짓 주장을 민간에 흘렸다.
당시 저태후는 올게 왔다는 심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에 대해 의심했다!"
권력은 이미 환온과 환씨 일가가 독점했기에 태후는 억지로 폐립 승인 조서를 선포했다. 모용수와 부견에게 패배한 후 환온은 점점 추악해져 갔다.
환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조정을 확실히 손아귀에 쥘 명목으로 제후왕인 사마희와 그 일파를 내쫓았다.
"마땅히 골육의 정을 잘라내서 (국가의) 원대한 계책을 보전하셔야 합니다. 만약 태재 부자(사마희 부자)를 제거하신다면 훗날의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 일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바인데 하물며 말보다 더한 것임에랴!"
"만약 진나라가 장구히 지속할 것이라면 명공(환온)께선 곧장 이 조서를 받들어 행함이 마땅하며, 만일 국가의 명운이 다했다면 나는 현자에게 길을 피해 주겠소."
환온은 사마희 일가를 죽이려 했으나 친형을 지키려던 간문제의 의지가 더 컸기에 유배로 끝이 났다.
그러나 사마희는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고 난폭하며 방자했다. 그렇기에 조정에선 그에게 권력을 내주지 않았는데 이에 불만이 많았다. 마침 신채왕 사마황과 역모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아무런 권력이 없는 그가 무슨 수로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환온이 사마희를 죽이려던 건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면 황족이라도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닐까.
[위진남북조] 동진 사안, 환온 견제 일인자
아무튼, 환온은 은씨와 유씨가 조정에 많은 것으로 판단해 고의로 모반의 죄를 만들어 은호의 아들 은연, 유량의 동생인 유빙의 아들 유정, 유유를 죽인다.
유빙의 아들 유유, 유천 등은 해릉으로 도망쳐 경구로 돌아와 군중을 모으는 등 격렬히 반항하지만 제압당한다.
당시 사안은 환온을 만나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안석(사안의 자), 그대는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게요?"
"군주가 앞에서 절을 하시는데, 신하가 뒤에서 가만히 서 있는 법은 없습지요."
이를 두고 사안조차도 환온에게 굴복했다고 평하는 해석이 많은데 이후 사안의 행보를 보면, 그 자리에선 환온에게 찬위의 뜻을 꺾으라는 행동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안은 끝까지 환온에게 찬위하지 말라는 말과 행동을 했을까?
[위진남북조] 전연 모용수와 전진 부견에게 패한 환온의 말년은 추악했다
이후, 곧 원제의 아들 회계왕 사마욱이 즉위하니 이가 간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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