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파촉) 정벌한 환온 - 어린 동진 황제 성제 강제 목제 [34화]

※ 34화 요약 - 어린 황제가 연이어 즉위하는 동진. 군공을 세우는 환온


위진남북조 동진 강제, 사마악[위진남북조 시대] 동진 강제, 사마악


유익은 야심이 많던 사람이었다. 형주의 관청에서 대회가 열린 자리에서 막료들과 나눈 대화는 이렇다.


"나는 한나라 고조라든가 위나라 무제(조조)가 되고자 하는데 어떠하오?"


"(장사 강반이 말하길) 공께서는 제 환공이나 진 문공과 같은 사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고조나 위무제와 같은 분이 되시는 것은 원하지 아니합니다."


함강 8년(342), 성제 사마연이 22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유량의 동생이자 외숙인 유빙이 성제의 친동생인 사마악, 강제를 즉위시킨다.


유량 사후, 손작孫綽이 그를 위해 비문을 지었다.


"유공은 원래부터 기꺼이 세속 밖에다 마음을 두고 있었다. 유연한 태도로 세상을 살면서 몸을 도회韜晦(재능이나 학식 따위를 숨겨 감춤)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속은 깊고 조용했으며..."


그러나, 그의 생전 행보를 보면 비문을 지은 손작이 거짓말을 했다.


강제 사마악 이후, 동진 황제들의 권력은 날이 갈수록 약화한다. 강제는 즉위하자 군신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재상 하충에게 물었다.


"짐이 이제 대업을 잇게 된 것은 누구 건의에 의한 것이었소?"


"폐하께서 천자의 자리에 오르시게 된 것은 유빙의 공이지 신의 힘은 아니었습니다. 신의 의견이 채택되었더라면 지금의 성명한 세상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위진남북조 동진 목제 사마담[위진남북조 시대] 동진 목제 사마담


이러한 강제도 2년 만에 세상을 떠나며 2살짜리 아기가 뒤를 잇도록 유언을 남기니 강제의 아들 사마담, 목제가 즉위한다.




영화 원년(345), 형주를 지키던 유익이 사망하며 아들 유원으로 하여금 뒤를 잇도록 요청했다.


형주는 호구가 1백만에 달하고 지리적 중요성이 매우 큰 까닭에 어린 유원을 대신할 유능한 인물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예상하셨듯이 문무를 겸비했으며 지략이 출중한 환온이 천거된다.


이전에 유익은 이미 환온을 성제 사마연에게 추천했던 일이 있었다.


"환온은 영웅과 같은 재주를 가졌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 보통 사람처럼 그를 대우하거나 그를 기르지 마시고, 의당 방속과 소호가 맡았던 임무를 맡기시면 반드시 어려운 것을 널리 넘어가게 하는 공로를 세울 것입니다."


이런 사실로 보건대 환온은 이미 동진 조정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친 환이는 소준의 난 때 끝까지 소준에 항거하다 한황에게 목이 잘린 충신이었다.


위진남북조 시기, 환온이 천거된 비슷한 시기에 유량의 동생 유익도 세상을 떠나자 환온은 4개 주의 군사를 총괄하는 안서장군, 형주자사에 임명됐다. 위진남북조 시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유담은 이렇게 말하며 훗날의 내홍(환온의 전횡)을 예견했다.


"그를 보내면 틀림없이 서초西楚의 땅을 평정할 수는 있지만, 이윽고 다시 억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 자신께서 장강 상류 땅을 다스리십시오. 제가 종군사마의 직을 맡겠습니다."


동진(통일 시대 서진, 분열의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 조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임자를 환온으로 결정했다.




동진 환온 공격로 vs 파촉 성한 방어로[위진남북조 시대] 동진 환온 공격로 vs 파촉 성한 방어로


위진남북조 초기, 파촉 땅의 성한은 형제간의 내분으로 이미 민심을 잃었으며 중앙 정부의 통제력도 많이 약화한 상황이었다. 환온은 원교의 진언을 듣고도 촉 공격의 확신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자 원교가 재차 간했다.


"조야의 모든 사람이 촉 땅 정벌을 막으려는 것은 우리가 서쪽으로 공격하는 동안 그 빈틈을 노리고 북쪽의 오랑캐가 내려올까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오랑캐들은) 우리의 경비가 삼엄한 것을 보면 감히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목제 영화 원년(345), 파촉 성한의 영주자사 찬안이 동진에 투항했다.

목제 영화 2년(346), 환온은 마침내 익주자사 주무, 남군태수 초왕 사마무기 등과 서정에 나선다. 당시 병력도 적고 촉으로 가는 길이 험했기에 조정에선 부정적인 전망이 많았다.


위진남북조 동진 영화 3년(347) 3월, 환온의 군사가 홀연 촉 땅의 청의현에 모습을 드러냈다.


파촉, 성한의 황제 이세는 숙부 이복, 사촌형 이권, 전장군 무견 등에게 대군을 맡겼으나 3일 치의 식량을 제외하고 취사도구를 비롯한 모든 군장을 버리고 쾌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환온의 군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보급로? 식량? 보급로?)

위진남북조 시대, 환온은 보급로를 모르고 진격하던 상남자였다[위진남북조 시대] 환온은 보급로를 모르고 진격하던 상남자였다


패배가 거듭되자 파촉 성한의 진군장군 이위는 투항했다. 진작에 진군했던 무견은 환온과 길이 엇갈려 싸워보지도 못하고 적군이 성도 앞에 있다는 소식에 흩어지고 말았다.


위진남북조 동진 영화 3년(347) 3월 17일, 이세는 필사적으로 환온군에 맞섰다. 매우 격렬했기에 동진의 참군 공호가 피살됐고 화실 몇 개가 환온의 말 앞에 꽂히기도 했다.


굉장히 격렬했던 전투였다.


!!고수, 진격의 북!!!!고수, 진격의 북!!

환온은 전세가 좋지 않자 퇴병을 알리는 징을 치도록 했으나 고수鼓手가 실수로 진군을 의미하는 북을 쳐댔다.


북소리를 들은 동진 군사들은 다시 진군하기 시작했고, 선봉의 원교가 병사들을 독려하며 파촉 성한의 군사에게 대승을 거뒀다. 성 아래에 이르러 성문에 불을 지르자 이세는 가맹 쪽으로 도망갔으나 이내 소용없는 짓이란 걸 깨닫고 환온에게 항복의 표문을 올렸다.


환온은 성도에 입성해 이세의 궁궐에서 주연을 열었고, 이에 파巴, 촉蜀의 벼슬아치들이 많이 모였다. 환온은 국가 존망은 인재人才에 달려 있다고 서술하며 기개 넘치는 말들을 쏟아내자 좌중은 모두 찬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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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온은 주무에게 파촉 일대를 위임하니 위진남북조 시대 드물게, 주씨의 3대가 연이어 40여 년간 이 일대를 다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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