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희 13년(417) 2월, 유유가 팽성을 출발했다. 왕진악과 단도제 등은 이미 동관에서 후진의 수비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후진은 전황이 끊임없이 불리해지자 북위에 원군을 요청한다. 당시 북위 조정에선 반대 여론이 강했고, 대신 최호도 이같이 말했다. "요흥은 이미 죽었고, 요홍은 나약합니다. 지금 유연柔然이 북쪽 변경을 노략질하고 있습니다. 유유와 싸우게 되면 남북으로 적을 맞이하는 셈이 됩니다. 유유의 청을 받아들여 저들을 서쪽으로 보낸 뒤 군사들을 요소에 배치해 동쪽을 지키면 됩니다. 만일 유유가 승리하면 우리가 길을 빌려준 것에 고마워할 것이고, 만일 패하면 저들이 철군할 때 공격을 가함으로써 요씨의 진나라를 도와줬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북위 원제는 이를 듣지 않고 원군을 보냈다. 처음..
환온은 파촉의 성한 평정의 공으로 정서대장군, 개부, 임하군공에 봉해졌다. 촉을 평정하자 환온의 위명이 천하를 진동시켰고 조정을 장악하던 회계왕 사마욱은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양주자사 은호를 심복으로 삼아 조정 대사에 참여시킨다. 이런 조치로 동진 조정은 환온의 지지파와 반대파로 갈리게 된다. 이런 일은 이후 벌어질 환온과 은호의 북벌, 양쪽 모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은호의 강족 불신은 동진 북벌 군대에 악영향을 미친다. 동진 목제 영화 5년(349), 동진으로선 북벌하기 좋은 시기였다. 후조의 석호가 병사하며 석씨 종친 간 내분이 일어나자, 환온이 북벌의 상주문을 올렸다. 그러나 사마욱을 위시한 동진 조정은 환온이 더 많은 공을 세우는 게 탐탁지 않았다. 환온 대신 저태후의 부친인 저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