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의 후진 정복과 내분 : 혁련발발 등장 [50화]

북위 최호 동상북위 최호 동상


의희 13년(417) 2월, 유유가 팽성을 출발했다. 왕진악과 단도제 등은 이미 동관에서 후진의 수비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후진은 전황이 끊임없이 불리해지자 북위에 원군을 요청한다.


당시 북위 조정에선 반대 여론이 강했고, 대신 최호도 이같이 말했다.


"요흥은 이미 죽었고, 요홍은 나약합니다. 지금 유연柔然이 북쪽 변경을 노략질하고 있습니다. 유유와 싸우게 되면 남북으로 적을 맞이하는 셈이 됩니다. 유유의 청을 받아들여 저들을 서쪽으로 보낸 뒤 군사들을 요소에 배치해 동쪽을 지키면 됩니다.


만일 유유가 승리하면 우리가 길을 빌려준 것에 고마워할 것이고, 만일 패하면 저들이 철군할 때 공격을 가함으로써 요씨의 진나라를 도와줬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북위 원제는 이를 듣지 않고 원군을 보냈다.

처음엔 기동력을 이용한 공격으로 여러 차례 동진 군대를 공격해 승리했지만 아박간 등의 장수를 잃는 등 3만 기병이 패퇴하자 최호의 건의를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이에 원제 탁발사는 최호에게 묻는다.


"유유가 지금 유홍을 치러가는 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어째서 그런가?"


"전에 요흥은 명성만 높았을 뿐 실속이 없었습니다. 유유는 요홍의 형제들이 서로 보위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는 틈을 타 침공한 것입니다. 병사들이 정예하고 용맹하니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유와 모용수를 비교하면 어떠하오?"


"유유는 재능이 있으니 모용수보다 위입니다."


모용수는 부형이 남겨준 자산을 토대로 일어났지만 유유는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동진 제1 권력자가 되었으니 유유가 더 유능한 초세의 인걸이라 밝힌 것이다. 이후 북위는 함부로 동진의 군대를 공격하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물론, 유유 생전에 말이다.


유유의 후진 정복유유의 후진 정복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타이콥)


낙양에 이른 동진 북벌 군대

북위의 요격군 마저 격퇴한 유유는 낙양에 이른다. 후진의 장수 노공 요소는 홧병이나 죽었고, 심전자와 부홍지도 무관을 뚫었다. 요홍은 심전자를 제압한 뒤 유유를 치려 했으나 되려 심전자와의 전투에서 크게 패해 파상으로 달아난다.

이러자 동관을 공격하던 왕진악은 유유에게 수도 장안을 치려 하니 허락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유유는 매우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였고, 왕진악은 위교에 이르러 병사들에게 말한다.


"우리들의 가족은 모두 강남에 있다. 여기는 장안의 북문이다. 집에서 만 리나 떨어져 있다. 승리하면 공명을 떨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시체조차 찾을 길이 없다. 우리 모두 죽기 살기로 싸우도록 하자!"


왕진악이 선봉에 서서 진격하자 후진 장수 요비 등이 전사하며 장안은 곧 함락됐고, 요홍은 스스로 투항했으며 동생 요찬은 종실 1백여 명을 이끌고 투항했다.


오직 11세의 요불념 많이 살아남기 어렵다 깨닫고 궁궐 담 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자진했다. 이로써 후진은 세 명의 군주가 지나며 34년 만에 멸망한다.


북벌군의 성과. 동진의 영토북벌군의 성과. 동진의 영토


유유 복귀, 북벌 군대 궤멸

동진 북벌군이 장안에 입경한 지 석 달이 지난 의희 13년(417) 8월, 건강에 있던 심복 유목지가 병사하자 유유는 급히 회군한다. 애초, 유유는 장안에 머물며 위진남북조 시대 서북을 경영하면서 북방을 통일하고자 했다. 그러나 제장들은 속히 건강으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이를 받아들였다.


이는 패착이었다. 동진 북벌군 비극의 시작이었다.


동진의 2차 북벌의 성과를 모조리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으니 이후 남조의 그 어떤 국가도 관중에 이르지 못했다(단 한 번, 빼고).


위진남북조 시대 악사. 화려한 머리 장식이 눈에 띈다위진남북조 시대 악사. 화려한 머리 장식이 눈에 띈다

유유는 둘째 아들 유의진을 안서장군에 임명해 옹, 양, 진 3주의 군을 지휘케 했으나 당시 그는 12세에 불과했다. 이에 왕수, 왕진악, 심전자, 모덕조, 부홍지를 남겨두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대장과 공을 탐하는 장수들끼리 모여있었으니 관중 일대에서 패배할 것은 당연했으며, 관중 일대에서 크게 포상을 받은 장병들 또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전투에 소극적이었다.


결정적으로 유유가 위진남북조란 혼란스러운 시대에 관중을 떠나자 민심이 이반되어 백성들도 동진 군대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유유 본인도 해선 안 될 말을 해버렸다.


"(심전자와 부홍지가 말하길) 왕진악의 가족이 관중에 있으니 그를 믿을 수 없습니다."


"종회가 촉 땅을 점거한 뒤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이는 위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속어에 '맹수는 여러 마리의 여우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경을 비롯한 10여 명이 어찌 왕진악 한 사람을 두려워할 것인가!"


북벌군의 핵심인 왕진악을 종회에 비유했으니 은연중에 유유 본인도 그가 반기를 들 테니 너희가 죽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무림군사에 나온 혁련발발 일러스트무림군사에 나온 혁련발발 일러스트


공을 탐하던 심전자와 부홍지는 왕진악이 모반할 "움직임"만 찾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동진 유유가 강남으로 돌아가자 대하의 혁련발발은 철기 2만으로 장안을 친다. 영격에 나선 심전자는 곧 회군하여 유회보를 지켰고 뜻밖에 많은 병력에 놀라 장안의 왕진악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


심전자는 이전에 왕진악과 군공을 다투던 중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여서 왕진악은 되려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 우습다며 그를 비하했다. 하지만, 심전자는 어쨌든 장안 북쪽에서 북벌군과 합세해 방어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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