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족 서연 남연 역사: 모용초 요흥 유유 [47화]


후연, 후진 북방 상황

후연이 창건될 당시 하동에선 모용홍이 서연을 세웠으나 16국에는 포함되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미약했다. 고작 2년 동안 보위가 7번이나 바뀌면서 최종적으론 모용외의 동생인 모용운의 손자 모용영이 황제가 되었다. 처음엔 후연의 번국을 자청했지만 386년 장자에서 황제를 선포했다.


중흥 8년(393), 남북조시대 영웅 모용수의 공격에 장자가 함락되며 모용영은 목이 베였다. 모용수의 뒤를 이은 모용보는 모용덕(전연의 황제 모용황의 막내아들이자 후연 모용수의 동생)에게 기, 연, 청, 서, 형, 예주 6개의 군사를 총괄케 했다.

당시 북위는 이제 막 건국된 신생 국가였지만 훗날 도무제로 추존되는 탁발규의 대군은 기세가 등등했다. 북중국의 최강자인 후연을 공격해 황제 모용보를 압박했고, 이내 모용보가 패퇴하자 수도 업성을 포위한다.


후진의 요흥은 후연을 도와 북위의 장수 탁발장을 대파했으나 전세는 전환되지 않았고 황제 모용보의 안위를 알 길이 없던 와중에 모용덕은 업성을 버리고 동진 안제 융안 2년(398) 봄에 업성을 빠져나와 황하를 건너와 연왕을 자처한다. 당시 모용보가 도주를 계속하다 여양에서 모용덕 군대와 만났으나 자립의 뜻이 있었던 모용덕은 모용보를 죽일 심산을 갖게 되었다.


모용보는 이 의도를 알고 북쪽으로 도주하지만 이후 신하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는다. 모용덕은 이후 부등의 동생 부광, 이변 등의 반란을 제압하고 광고, 청주, 유주 일대의 땅을 점거한 융안 4년(400)광고를 수도로 삼아 황제로 즉위한다.


이를 남연이라 부른다.


[위진남북조 시대 407년 지도] 동진 북벌로 멸망한 남연 위치[위진남북조 시대 407년 지도] 동진 북벌로 멸망한 남연 위치


동진 안제 원흥 3년(404), 환현을 패망시킨 유유는 동진 조정의 일인자가 된다. 백치 황제 사마덕종을 다시 보위에 올리고 시중, 거기장군, 도독중외제군사, 서주자사, 청주자사, 녹상서사에 임명되었다.


군신들의 추대로 선양 받으려 했으나 남조 환현의 패망을 봤던 그는 이를 거절하고 자신의 군영으로 돌아간다. 그는 곧 후진의 요흥에게 동진의 영토를 돌려 달라고 요청했다.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 안제 융안 3년(399)

재해가 빈번히 발생하자 요흥은 스스로 제호를 깎고 이웃 나라와 화친을 요구할 정도로 유가 사상을 신봉했기에 이 요구를 수락하는 특이한 결정을 내린다. 마침 남방에선 오두미도의 난을 일으킨 손은의 매부 노순과 서도복이 동진 조정에 복종의 의사를 밝혔으니 내외적으로 유유의 기반은 탄탄해진다.

모용덕은 혼란스러운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의 상황을 틈타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려 했으나 애초 국력이 약했던 남연으로선 회수 일대의 동진 영토를 약탈하는 것에 그쳤다. 이후 장안에서 미친 척을 하며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던 모용덕의 형인 모용납의 아들 모용초가 천신만고 끝에 모용덕을 찾아온다.


아들이 없던 모용덕은 조카를 북해왕, 시중, 표기대중군, 황태자로 삼는다.


남연 멸망의 원흉. 무능한 황제 모용초남연 멸망의 원흉. 무능한 황제 모용초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 안제 의희 원년(405), 모용덕이 병사하고 모용초가 즉위했으나 그릇이 작고 소인배를 중용했기에 종친인 모용종, 모용법, 모용진 등은 외직을 전전하다 다른 국가들로 투항한다.


게다가 광고성 안에서 대규모 살인을 저지르며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 했기에 원성이 자자했다. 당시 모용초의 생모 단씨가 장안에 억류되어 있었다. 그래서 모용초는 칭신을 하여 간신히 모친 일행이 귀국할 수 있도록 머리를 썼지만 남연에서 후진으로 망명한 모용은은 이런 말을 한다.


"연왕의 칭신은 본의에서 나온 게 아니고 단지 그의 모친을 데려가기 위해 가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모친이 귀국하면 다시 황제를 칭할 것입니다."


이에 요흥은 단씨 일행을 다시 연금한다.



예악을 중요시했던 요흥은 이전부터 남연에 궁정악단을 요구했으나 남연은 이를 계속해서 거절했었다. 그러자 이때는 120명의 궁정악단과 사신 장화를 장안으로 보내게 된다.


"소신은 번국의 사절입니다. 충심으로 상국과 우호 관계를 맺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요흥은 곧 단씨 일행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남연은 이후 수년간 재해가 그치지 않아 국력이 계속 손상된다.


남조 동진 안제 의희 5년(409) 정월

모용초는 형세가 불안함에도 궁정 악대 수준을 문제로 삼아 동진의 변경을 약탈하며 궁정 악대의 수와 질을 늘리려 노력한다. 3월, 남연의 모용초가 회수 이북의 동진 영토를 급습해 수만 명에 달하는 백성을 약탈한다.



[위진남북조 시대 송무제 유유] 동진 장군 출신으로 남연을 멸망시킴[위진남북조 시대 송무제 유유] 동진 장군 출신으로 남연을 멸망시킴



황제 모용초의 병적인 음악 애호를 뒷받침하기 위해, 2천5백의 동남동녀가 선발되어 강제로 악기와 가무를 익혔다. 동진의 권력자 유유는 촉의 초종, 영남의 노순을 제압하지 못해 걱정이었는데 남연까지 변경을 지속해서 공격해 백성을 약탈해갔다. 참을 수 없었던 유유는 마침내 남연 정벌을 위한 상주를 올린다.


당시 조정에선 부정론이 많았다. 오직 좌복야 맹창, 거기사마 사유, 참군 장희는 승리를 자신했다.


건강을 출발한 유유는 회하를 거쳐 사수로 들어갔고 6월엔 하비에 도착한다. 함선과 치중을 이곳에 정박시킨 뒤 경무장한 채 낭야를 향해 진군했다. 예전 환온의 실패를 거울삼아 점령지에 병사를 배치해 보급이 끊어지지 않도록 조처를 했다.


동진의 북벌론은 환온의 실패를 거쳐 더욱 단단해졌다.


바야흐로, 동진의 북벌 part2. 유유ㅠㅠ의 북벌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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