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 내전 - 은중감, 환현, 오두미도 손은, 삼국지 [44화]

위진남북조를 가로지르는 비수대전 승리 이후, 동진은 이 기회를 틈타 양양, 익주, 양주 등지를 수복한다. 하지만, 중원 수복 의지는 약해 회수와 관중 일대의 요충지는 얼마 안 가 다시 잃는다. 전진 멸망의 원인은 비수대전 패배이다.


동진 사마도자 전횡, 은중감 환현 오두미도 손은 거병 [44화]효무제 사망 - 안제 즉위 - 사마도자 전횡 - 은중감 환현 오두미도 손은 거병



국력이 크게 손상된 것은 아님에도 부견의 무리한 융화 정책이 불러온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1. 강제적으로 살던 곳을 떠나 중원의 낯선 곳으로 이주한 이민족들의 고충을 부견은 이해했을까?
  2. 황실과 가까운 저족들은 국가의 중심부가 아닌 변방으로 나간 것에 만족했을까?


부견은 꿈만 좇았지 현실적인 감각이 매우 떨어지던 인물로 보인다. "왕맹 같은 시어머니"가 곁에 없는 "뜬구름 잡기 대마왕 부견"의 패망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큰일을 치룬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 효무제 사마요는 태원 21년(396) 9월 급사했다.


"장귀인, 당신도 곧 30세가 되겠구려. 나이로 따지면 응당 폐출될 나이요, 나는 젊고 예쁜 여인들이 좋소!" 


어린 여자가 좋다던 효무제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장귀인과 태감들에게 살해된다. 이 사건은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일이기도 하다. 곧 진혜제 사마충만도 못한 사마요의 아들 서마덕종이 보위에 올랐다.


효무제 동생 사마도자

동진 안제 사마덕종동진 안제 사마덕종



태원 10년(385)에 사안이 사망하며 15개 주의 군사 총괄 자리는 효무제의 방탕한 동생 사마도자에게로 갔었다. 백치 황제와 매관매직을 일삼는 황제의 작은 아버지가 나를 다스리니 동진은 이내 북방의 5호 16국 시대나 다름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진다.


이전에 매관매직과 가렴주구로 사마도자가 조정을 능멸하니 위진남북조 시대 효무제는 큰 처남 왕공을 남연주자사, 강남 세족 은중감을 형주자사, 왕순, 왕아 등은 궁내 복야로 임명해 회계왕 사마도자의 권력을 견제했었다.


이중 은중감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길 정도로 문학을 사랑하며 청담에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흘 동안 도덕경을 읽지 않으면 곧장 혀뿌리가 굳어지는 느낌이 든다."


한편, 사마도자는 말을 가려 하질 못해 환현을 자극했다. 그만큼 교만했었다.


만화 속 환현, 만화 제목은 모름만화 속 환현, 위진남북조 시대 만화 제목은 모름


가벼운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환온이 만년에 모반하려 했을 때도 이와 같았을까?"


다른 날에는 또 이같이 말했다. 그날은 환현이 의흥군에서 돌아와 사마도자를 만나는 자리였는데 사마도자는 취해있었다.


"환온(환현의 아버지, 일부러 모반을 꾀했던 환온이라 이름을 바꾸어 부름)이 돌아와서 모반을 일으키려고 하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주변의 만류에 사마도자는 억지로 그에게 사과하며 술을 권했다.


"환현, 자아, 한 잔"


여러 번이나,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같이 큰소리로 말하자 환현은 가슴속에 큰 원한을 품었다. 환현은 위진남북조 시대 권신 환온의 막내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영특했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형들의 무릎 위에서 군부 일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후 형들이 막내 동생 환현에게 높은 관직과 아버지의 유산을 양보했다. 환현이 태어날 때 햇빛이 방안에 비쳤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은중감 환현 왕공

얼마 후, 효무제가 사망하자 권력은 동생 사마도자에게 집중된다. 이때 왕국보와 왕서 형제의 전횡도 심각해 조야에 원망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또한 신분이 미천한 이들이나 비구니들이 궁중을 오가며 많은 관직을 팔아넘기자 조위 시절부터 이어지던 구품중정제는 그 근본이 흔들린다. 이후 남조가 교체되는 와중에 흐지부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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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마도자의 전횡에 은중감, 환현, 왕공(안제 사마덕종의 외숙, 당시 전장군)은 기병을 모의한다.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판 삼국지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모의는 사전에 발각되어 건강의 왕국보 형제는 결론을 못 내리고 발만 동동 구르다 사마도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가장 먼저 기병했던 왕공은 철군해 경구로 돌아갔고 은중감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후, 사마도자의 아들 사마원현은 종실인 초왕 사마상지, 사마휴지 형제를 심복으로 삼았는데 이들 역시 전횡을 일삼자 은중감, 환현, 왕공이 다시 거병한다.


동진 안제 융안 2년(398) 9월, 은중감의 장수 양전기와 환현의 수군이 온구에 이르러 사마도자의 관군과 맞선다. 이들은 사마도자 군에 잠시 주춤했으나 이내 반격을 개시해 석두성에 까지 이른다. 이때 왕공의 진중에 내분이 발생해 왕공이 목숨을 잃고 휘하의 유뢰지가 사마도자에게 투항한다.

오두미도 거병

이즈음인 융안 3년(399), 남방의 오두미도 손은까지 거병한다. 이전에 왕공이 기병했을 때, 손태는 독립할 생각으로 왕공 토벌군을 모집하였으나 조정에 발각되어 목이 달아난다.


오두미도는 이전의 두자공과 손태 등을 거치며 사이비 종교로 거듭났는데 손태의 시체가 저잣거리에 내걸리자 신도들은 그가 "매미가 껍질을 벗듯이 신선이 되었다"며 그를 향해 제사를 지내기까지 한다.




이후 손태의 조카 손은의 군대가 회계에 이르자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위진남북조 시대 오두미도를 신봉하던 왕응지는 백성과 관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비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먼저 대신大神에게 청했던바 신병神兵을 보내주시어 구원해 주시기로 약속했다. 적은 자연히 격파될 것이다."


방비를 하지 않게 되자 손은은 동진의 회계를 쉽게 점령했다.


삐뚤어진 종교관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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