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 전진 멸망, 요장에게 피살된 비수대전 주인공 부견 [43화]

동진의 군사는 기세를 놓칠라, 빠른 속도로 전진의 군대를 추격했다. 동진은 곧 수양을 회복하고 전진의 회남태수도 포로로 잡는다. 그러나 전진의 전선이 꽤 길었기에 동진의 추격전도 그다지 오래가진 못했다.


후방의 전진 군대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에 비수대전은 그걸로 끝이 난다. 부견은 모용수의 부대만이 진을 유지하며 퇴각했기에 그곳으로 몸을 의지했다.


배고픔과 화살에 맞은 통증 때문에 힘들었던 부견은 회수 부근에서 한 백성에게 밥과 돼지 넓적다리를 받자 비단 열 필과 솜 열 근을 하사하기도 했다.

"폐하께서는 안락함에 싫증을 느끼셔서 스스로 위험과 곤경에 처하게 되셨습니다. 신은 폐하의 자식이고 폐하는 신의 아버지이시니 어찌 자식이 그 아버지를 봉양하고서 보답을 바랍니까!"


전진군의 전선이 길었고 선봉군이 비록 패했지만, 후방에 남은 많은 물자를 고려하건대 이는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무리한 전쟁을 벌인 부견을 비난하기 위해 누군가 지어낸 거짓 일화일 것이다. 


북조 전진 멸망, 요장에게 피살된 비수대전 주인공 부견 [43화]비수대전에서 패배한 전진은 선비족, 강족, 정령, 오환 등의 반란을 막지 못해 멸망한다


모용수와 돌아온 부견

모용수의 자제와 막료들은 부견을 죽이자고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몸을 의탁해 왔다. 그런데 어찌 그를 죽이겠는가? 일찍이 내가 망명했을 때, 그는 나를 국사國士로 받아들여 최고의 대우를 해 주었다. 그 후 왕맹에게 살해당할 뻔했을 때도 또한 나의 혐의를 벗겨 주었다.


그 은혜에 아직 전혀 보답을 못 했다. 진나라의 명운이 다했다면 그를 죽일 길은 언제라도 있다. 그때가 오더라도 함곡관 서쪽에 대해서는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대신 그 동쪽에서 연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모용수는 패잔한 전진의 황제 부견을 받들어 장안으로 돌아온다.


[비수대전, 부견 패배와 전진 해체 (모용수와 요장)] 동진이 회복한 영토[비수대전, 부견 패배와 전진 해체 (모용수와 요장)] 동진이 회복한 영토

100만 대군에게 승리한 동진 북부병

비수대전의 승리로 동진군은 수만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비단과 모직물 등 보물을 산더미처럼 빼앗았다. 소, 말, 나귀, 노새, 낙타 등도 10만 마리나 얻는 대승을 거뒀다. 동진은 사안이 진작에 키워놓았던 어린아이들의 활약으로 승리를 거뒀다. 북부병의 활약도 그렇고 그의 노력으로 환씨 일가와 어쨌건 조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안은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둑을 두고 있던 손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린애들이 드디어 적을 깨뜨렸군!"


부견이 비수에서 패배할 당시 장안을 막 떠나던 병력까지 있었으니, 10만 정도의 병사가 동원되어 패배한 것으로 추산된다.



[비수대전, 부견 패배와 전진 해체 (모용수와 요장)] 동진 북부병 활약[비수대전, 부견 패배와 전진 해체 (모용수와 요장)] 동진 북부병 활약



만약 대장 양성을 비롯한 10여 명의 장수가 살아남아 선봉에 나선 병사들을 저지했다면 전진군은 과연 궤멸하지 않고 동진군에 역습을 가할 수 있었을까? 만약이란 없지만, 동진의 장수 부족과 여러 이민족으로 구성된 혼합 부대의 한계성이 너무 극명하게 드러난 전진의 패배였다.


전진, 그리고 부견에게 이 패배의 후유증은 너무 컸다. 비수의 패배 이후 전진의 국력은 그다지 약화하지 않았다. 많은 병사가 죽긴 했지만 국가에 치명타로 이어질 만한 피해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황제 부견의 안위는 안정적이었다.


부견 북조 비수대전 전진 멸망[위진남북조 5호16국 시대 강족, 선비족, 오환족, 정령 등 반란]


부견의 최후, 전진 멸망

비수대전의 후유증이 너무 컸던 원인은 왕맹의 유언을 따르지 않아서...가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 부견은 애희 장부인에게, 


"내 이제 무슨 면목으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라는 말이 무섭게, 모용씨 일족은 곧 전연의 고지로 도주했고, 강족의 요장과 정령, 오환 등도 거병했다.

특히 수도 장안의 상황은 심각했다. 장안의 선비족들이 모의해 부견을 급습하려다가 누설돼 부견은 모용위 부자와 일족을 비롯한 선비족들을 도륙했다. 그러나 이미 모용위의 동생 모용충이 군사를 동원해 이미 장안성을 포위한 상황이었다.



[비수대전, 부견 패배와 전진 해체 (모용수와 요장)] 강족 요장, 부견을 살해한 인물[비수대전, 부견 패배와 전진 해체 (모용수와 요장)] 강족 요장, 부견을 살해한 인물



포위가 오래되자 부견은 이런 참언을 믿고 어이없는 짓을 벌인다.


"황제가 5명의 장수를 내놓으면 오랫동안 갈 수 있다." 


태자 부굉에게 성을 지키게 한 뒤 장안을 빠져나와 강족의 소굴인 오장산으로 향했다.


당연히 요장의 대장 오충은 부견을 단단히 묶은 뒤 신평으로 압송한다. 요장은 선양과 옥새를 요구했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부견을 교살한다. 전진 건원 21년(385) 7월의 일이다. 부견이 피살되자 장안의 태자 부굉은 성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하여 동진으로 투항한다. 업성을 지키던 서장자 부비도 동진에 원군을 요청하나 큰 의지가 없었던 동진 조정은 유뢰지를 바로 철군시킨다.



[비수대전, 부견 패배와 전진 해체 (모용수와 요장)] 비수대전으로 멸망한 전진[비수대전, 부견 패배와 전진 해체 (모용수와 요장)] 비수대전으로 멸망한 전진



이런 와중에 부비는 건원 21년 (385) 8월, 진양에서 보위에 올랐으나 수하에 병사는 3천에 불과했다. 옛 전진의 저족 부씨의 영광은 사라졌다.


이후 부비는 근거지도 잃고 떠돌다 동진을 공격하려 했으나 동진의 장군 양위에게 급습을 받아 참살되고 태자 부녕은 건강으로 압송된다. 부비가 패사하자 저족은 부견의 족손 부등을 옹립해 포한에서 요장과 전투를 벌인다.

부등은 싸움에 능했기에 강족 군사를 죽인 후 그 시체를 익혀 먹으며 셀프 식량 조달을 했다. 싸움 전에는 항상 부견의 신위에 예를 올리며 병사들과 눈물을 흘렸다. 부등의 계속된 승리에 저족과 한족 등이 귀부했다. 부등은 이내 교만해져 방비를 소홀히 했고 강족의 요장은 밤 사이 급습을 가해 저족에게 치명타를 입힌다.


이후의 전투에서도 계속 승리를 거두며 부등을 옹주로 도망가게 한다. 요장은 호기롭게 부견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러나 요장은 부견을 죽인 후 그의 환각을 보는 등 정신병 증세를 보이다 후진 건초 9년(394) 4월에 죽고 아들 요흥이 보위에 오른다.


[위진남북조 42. 사마도자와 환현] 비수대전 이후 동진이 얻어낸 영토비수대전 이후 동진이 얻어낸 영토



부등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공격을 감행하지만 요흥의 군대에 협격을 당하며 대패한다. 요흥은 계속 추격하여 옹주 인근의 마모산에서 부등을 죽게 한다. 부등의 아들 부숭이 뒤를 이었으나 석 달 만에 패사하고 말았다. 이로써 전진은 실질적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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