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부견 - 중국 북방 통일과 비수대전 [41화]

북조 통일왕조 전진, 세상을 떠나는 왕맹

전진 건원 6년 11월의 일이었으니 병사를 일으킨 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아 전연은 전진에 멸망했다. 전연을 멸망시킨 부견은 양주의 전량국 장천석에서 투항을 권했고 장천석은 번국을 칭한다. 이후 부견은 요장을 보내 양주를 함락시키고 장천석은 장안으로 끌려와 시중, 비부상서, 귀의후에 봉해진다.


이후 그는 비수대전에서 패배할 당시 동진에 투항하여 효무제에게 중용되었다. 그러나 부견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으니, 건원 11년(375), 왕맹이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죽기 직전 유소를 올렸다.


"폐하는 공업이 쉽게 이뤄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응당 전전긍긍하며 여림심연如臨深淵(두려워하고 조심하고 삼가며, 깊은 못 가에 서 있는 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하라)하는 자세로 국사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남쪽 진나라는 비록 옛날의 오월보다 협소하지만, 정통을 잇고 있으니 사이좋게 지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선비족(모용수 일파)과 강족 등을 경계해야 합니다. 훗날 그들은 큰 우환이 될 것입니다."


부견은 생전에 왕맹의 의견을 잘 따랐으나 그가 죽은 뒤엔.... 부견은 태학의 학생들을 위로하며 내치를 다진다.


[위진남북조 시대] 전진 부견의 충신이자 명신인 왕맹[위진남북조 시대] 전진 부견의 충신이자 명신인 왕맹


 건원 9년(373)

 동진에서 위임한 주씨 일가의 파촉 정벌

 건원 10년(374) 9월

 촉 장육 반란 제압

 건원 12년(376)

 전량, 대국 함락

 건원 15년(379)

 동진 양양을 공격하여 치명타를 입히는 등 군사 활동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냄


특히 전량을 얻고 나선 서역의 여러 나라가 조공을 바치니 하북을 통일한 전진의 위세는 가히 대단했다.


이제 남은 건 남방의 동진 뿐이었다.


20여 년간 부견의 전진은 북방을 통일했고 내치도 잘 이뤄 부강한 국가로 거듭났다.


당시를 진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영가의 난 후 학교라는 말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부견이 제위에 오르자 유학에 크게 관심을 두고 왕맹은 민심의 안정에 노력했다. 정치에 조리가 서고 학교는 점차 융성하였다.


섬서성 일대는 완벽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다.


수도 장안에서 여러 주에 이르기까지 도로 양쪽으로 모두 회화나무와 버드나무를 가로수로 심고, 20화리(약 1km)마다 정자, 40화 리마다 역사驛를 만들어 여행자는 그곳에서 보급과 휴식을 취하고, 상인과 수공업자는 길에서 자유롭게 거래했다.


[위진남북조 시대] 369년 형세도, 전량, 대국, 전연, 전진[위진남북조 시대] 369년 형세도, 전량, 대국, 전연, 전진


사람들은 이 태평성세를 가져온 군주를 찬양하며 노래하였다.


'장안 도읍의 큰길은

 버드나무와 회화나무 가로수가 뻗어 있고

 붉은 수레가 달려가고

 위로는 봉황님이 살고 계시는구나

 훌륭한 분들이 우르르 몰려와

 민초들을 이끌어 주시는구나.'"


천하 통일을 꿈꾸던 부견에겐 동진 밖에 보이질 않았다. 동진을 멸망시키고 동진의 황제와 동진 조정 대신들을 전진의 신하로 만들고 싶어졌다.

비수대전 서막, 반대하는 부융과 찬성하는 모용수

건원 15년(379), 전진 부견은 양양 전투에서 주서(환온의 막내아들 환현이 천거한 인물, 비수대전의 주인공)를 포획하자 동진 정벌의 뜻을 대신들에게 이야기한다. 대신들 대부분이 반대의 뜻을 표하자 부견은 모두 내보내고 친동생 부융과 단둘이 이야기했다.


[위진남북조, 중국 동진 전진의 비수대전] 북방을 통일한 전진 부견[위진남북조, 중국 동진 전진의 비수대전] 북방을 통일한 전진 부견


5호16국 시대 위진남북조 그림[5호16국 시대, 위진남북조 벽화] 북조 양식

부견 동생 부융 역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첫째, 천상이 불리합니다. 오월의 땅은 물산이 풍부합니다. 둘째, 진나라 군주(효무제 사마요)는 명군이고, 그 밑에 사안 및 환충과 같은 명신들이 있습니다. 셋째, 쉬지 않고 정벌에 나선 결과 병사들이 크게 피로해 있고, 전쟁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

...

(전진 재상 왕맹의 유언 상기) 정벌에 나섰다가 아무 공도 세우지 못하고 귀환할 경우 어찌할 것입니까?


폐하(부견)가 믿고 있는 선비족과 강족 및 갈족 등은 지금 장안 부근에 두루 산재해 병권을 지니고 있는데 우리 황족과 귀족들은 먼 변방의 수령으로 있습니다. (주나라를 따라서 봉건제를 시도한 결과) 일단 출병하면 후회한들 소용없게 됩니다."


대부분 신하가 반대하는 가운데 모용수만은 부견을 지지했다.


모용수 : "폐하는 응당 군신들의 여러 말에 흔들리지 말고 천기에 응해 독단함으로써 불세출의 공업을 쌓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부견 : "나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할 사람은 오직 경 한 사람밖에 없소!"


이후 왕맹과 부융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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