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탄지 사안이 막은 환온 찬탈, 환현과 북부병 [38화]

간문제는 온후한 성격으로 당당한 기량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봐선, 이 당시 환온이 과연 적극적으로 찬위를 노렸을진 알 수 없다.


반면 이에 반대되는 사례가 하나 있는데 이 사례를 놓고 보면 환온이 간문제가 어떤 인물인지를 미처 알지 못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위진남북조] 환온을 막아낸 동진 사안[위진남북조] 환온을 막아낸 동진 사안


환온은 간문제, 태제 사마희와 함께 수레에 타고 가다가, 은밀히 사람에게 명하여 수레 앞뒤에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게 하였다. 행렬은 깜짝 놀라 혼란에 빠졌다. 태재는 두려움에 떨며 수레에서 내려 달라고 했다.

뒤돌아서 간문제를 보니 조용히 있으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환온이 말했다.


"조정 안에도 이런 현인은 있는 법이로군."


그러나 간문제 또한 즉위하자마자 병에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이에 그는 환온에게 양위의 뜻을 밝히는 서신을 썼다.

"어린 자식이 가히 보필할 만하면 보필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대가 스스로 취하도록 하시오!"


시중 왕탄지가 간문제의 서신을 병상 앞에서 찢으며 선양은 결코 안 된다 주장했다. 서신 일부를 고쳐 환온에게 보내어 국가의 중요 대사는 대사마 환온에게 고할 것을 알린다.


[위진남북조] 동진 효무제 상상도[위진남북조] 동진 효무제 상상도


간문제는 즉위 8개월만인 함안 2년(372) 7월에 사망했으나 당시 건강에 환온이 없었기에 대신들은 태자 사마요를 새 황제로 옹립하는 것을 주저했다.


이에 상서복야 왕표가 결단해 사마요를 옹립했으니 그가 효무제(영계 좋아하던 그 양반 맞아요)이다. 당시 저태후는 섭정의 조서를 미리 작성해 놨으나 다시 한번 왕탄지가 지극히 간하여 저태후의 조서도 없앴다.


[위진남북조] 환온[위진남북조] 환온

효무제 영강 원년(373) 3월, 환온이 군사를 이끌고 건강으로 들어갔다. 태자 사마요를 옹립하고 환온에 대한 양위를 반대한 왕탄지와 사안이 곧 죽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왕탄지는 주살 당할까 두려워 사안을 찾아갔었다.


"대체 어찌하면 좋겠소?"


"진왕조의 존망이 우리의 태도 하나에 달려 있소."


왕탄지는 죽을 것으로 예상해 환온의 앞에서 땀을 비 오듯 흘렸지만, 사안은 조용한 모습으로 환온을 맞이하며 담소를 나눴다.


당시 자리에는 위병들이 좌우에 도열 되었으나 사안은 위병들을 바라보며 환온에게 이같이 말했다.


"나는 제후에게 도道가 있으면 주위에 있는 나라들이 지켜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명공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자들을 벽 사이에 배치해두실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환온이 웃으며) 아무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요."


이 자리에서 사안은 적극적으로 다른 마음을 품어선 안 된다고 설득을 했기에 동진의 황실은 가까스로 보존될 수 있었다.





환온은 건강에 14일 동안 머무는 사이 지병이 도져 본거지인 고숙으로 돌아갔으나 같은 해 7월, 그곳에서 병사한다. 환온은 죽기 전 사안의 문병을 받았는데 여전히 그는 사안을 존중하고 있었다.


"우리 문안에서 오래도록 이만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애초 환온이 사마소나 조비 처럼 찬위할 의지가 강했다면 왕탄지와 사안 등은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과 담소를 나누는 일도 없었을 테고 이미 모든 걸 포기한 저태후를 들들 볶아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계속 만들어 갔을 것이다. 최대한 강압적이지 않은 형태로 선양을 받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이나 이미 죽은 사람의 마음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환온에게 친애를 받았던 고개지는 훗날 환온의 묘지에 참배하고 이런 시를 지었다.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마르니 물고기와 새는 장차 어디에 의지해야 할 것인가?"


이에,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신이 그토록 환온을 의지하고 있다니 곡하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코에서 내뿜는 탄식은 광막廣莫의 장풍長風과 같고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황하의 폭포가 떨어지는 것과 같도다."


[위진남북조] 사안[위진남북조] 사안


환온이 죽자 동생 환충은 환희와 환제가 욕심을 부리며 또 다른 마음을 품은 것으로 판단해 기약도 없는 유배형을 내린다.


결국, 환온의 여섯 살 막내아들 환현이 남군공의 작위를 세습한다. 환현은 어려서부터 형들의 무릎 위에 앉아 관무를 보며 영리한 말을 하는 등 영재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추후엔 동진의 황위를 빼앗아 초를 세우나, 2달 만에 초는 무너지고 환씨 일가도 도륙되니 환온은 아마도 이런 일을 우려해 강압적인 양위를 바라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위진남북조] 비수대전 당시 북부병[위진남북조] 비수대전 당시 북부병


이렇게 동진의 영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살아남은 사안은 정예군 설치의 필요성을 느껴 북쪽에서 내려온 장정 중 건장한 쳥년들을 선발해 이른바 북부병北府兵을 구성했다. 이 북부병은 동진 말기까지 동진의 중요한 군사 집단으로 역사에 자주 이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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