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위 우문태는 사원대첩 후, 사기가 올라서 적극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여, 일거에 하동의 포판과 낙양의 금용성을 확보했다. 기세를 몰아 우문귀가 영천까지 공격하여 의주, 양주, 예주, 광주, 형주 일대를 서위 영토로 만든다. (당시 동위는 효정제, 서위는 문제 시기) 동위 효정제 원상 원년(538), 동위 고환의 장수 후경이 낙양 금용성을 탈취한 뒤 약탈을 감행한다. (3차 회전 하교지전, 이 글을 주로 참고) 후경은 낙양 내외의 많은 민가와 관청을 불살랐다. 서위의 문제 원보거와 승상 우문태는 원래 낙양을 점령한 후 선제의 능원에 제사 지내고자 하였는데, 후경이 금용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우문태가 친히 대군을 이끌고 가서 지원했다. 전군이 곡성(谷城, 하남 신안현 동쪽)에 이르렀을 때, 고환의 동위 선봉..
영희 3년(534) 7월, 북위 효무제가 10만 병사로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 양나라를 치겠다며 병사를 일으켰지만, 이는 북쪽의 고환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고환은 22만 병사를 다섯 갈래로 나눠 효무제의 친정을 돕겠다고 했으나 이는 효무제와 대적하겠다는 의미였다. 효무제가 친히 10만의 군사로 진양의 고환 공격을 개시한다. 이전에 효무제는 관서의 군벌인 우문태를 상서좌복야에 임명하며 공주를 보내 처로 삼게 했다. 믿을 만한 보험을 하나 둔 것이다. 그러나 효무제나 주변 대신들은 소인배에 불과했다. 곡사춘이 급히 내려오느라 피로한 고환의 군사를 기습하려 했으나 황문시랑 양관이 이를 막았다. "곡사춘이 도하 한 후 기습에 성공해 고환을 토벌할지라도 이는 또 하나의 고환을 만드는 것입니다."우매한 효무제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