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수를 둔 유의유유와 함께 환현을 토벌했던 유의는 처음에 유유와 대등한 위치였으나 이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유의는 이에 조정 내부에서 힘을 기르고자 끊임없이 더 많은 군권을 요구했다. 물론, 유유가 없는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유유가 노순의 반란을 제압하고 입경하니 조정 내부의 분위기는 다시 한번 전환된다. 의희 8년 (412), 형주자사 유도규가 노환을 이유로 퇴임하자 유의는 형, 영, 진, 옹주 4개 주의 군사를 총괄했고 이후에도 자신의 측근들을 요충지의 대장으로 계속해서 임명한다. 유의는 이미 형주의 군부를 장악해 북으론 한수, 서쪽으론 파촉, 남으론 영남으로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요충지를 점거한 상태였다. 유유가 계속 유의의 이런 청을 들어준 건 자신감의 표시이기..
이전 편 - 동진 내전 - 은중감, 환현, 오두미도 손은, 삼국지 [44화]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에서 삼국지가 벌어지는데 ... 손은은 정동장군을 자처하며 회계의 관원을 죽이고 병사들과 그 시체로 국을 끓여 함께 나눠마시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부녀자들은 아이들이 행동에 방해된다고 생각해 물속에 집어 던져 익사시키면서 이같이 주문을 외웠다. "먼저 신선이 된 것을 축하한다. 나는 교주를 알현한 후 너와 다시 만날 것이다." (원래 오두미도는 이렇지 않다) 당시 동진은 환현, 은중감, 양전기가 할거하고 있었으며, 조정 내부에 손은을 추종하는 신도들도 많았다. 그러나 손은의 반란은 오래가지 못했다. 은중감 휘하에 있던 유뢰지의 장수 ㅠㅠ 아니 ㅇㅇ 아니 유유가 이끄는 북부군에게 금세 궤멸한 것이다. 손은..
환온의 측근인 치초 일가 중 일부가 오두미도 도교를 신봉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훗날 손은의 난이 발생했을 때, 성문을 열고 손은을 받아들인 사씨 일가도 있었다. 이를 보면, 도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파촉과 동진 일대에 넓게 퍼져있었다. 관련 일화를 하나 살펴보면, 동진 치초 일가 중 한 사람인 치음은 도교를 독실하게 믿었는데, 배탈이 오래 지속되자 우법개란 유명 의원을 찾아간다. "군후께서 앓고 있는 병은 바로 정진精進을 너무 지나치게 해서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탕약 한 제를 받아 마셨더니 곧바로 설사가 나왔고, 주먹 크기만 한 종이 뭉치가 몇 개 나왔는데, 이전에 삼켰던 도교 부적들이었다. 또, 지위가 높았던 왕헌지는 자신의 병이 위독해지자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훗날 사중랑 사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