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라 전성기를 만든 세종 야율원 정치 3가지, 완안량 배제 ◆ 요나라 세종의 통치세종은 중원을 통치의 중심으로 삼는 완안량의 정책을 계속 집행하면서 완안량이 실행했던 개혁의 성과를 발전시켰다. 그는 즉위한 초기에 당시의 형세를 분석하고 참지정사 이석의 의견을 받아들여 계속 한족 지역을 통치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봉건제를 발전시켰다. 천하의 중심부를 점거하면서 사방을 장악하고 통제해 만세의 대업을 이루었다. 부분적인 수구 세력이 전면적으로 해릉왕의 정책을 부정하는 상황을 전환시켜 계속 의연하게 중도를 수도로 하도록 결정하고, 아울러 즉시 동경을 떠나 중도로 이주해 진취적인 면을 추구하는 결심을 강하게 표현했다. ◆ 요나라 질서의 안정 세종은 정책의 방침을 정하자마자 곧바로 통치를 확고히 하고 질서를 안정시..
요나라 역사, 간신 야율을신의 천권 [무능한 거란족 도종] 난하에서의 정변 중에 지북추밀사사 야율을신과 야율인선 등이 공동으로 야융중원을 반격해 도종을 보호했다. 사건이 평정된 후에 논공행상을 통해 야율인선과 야율을신은 각각 북원과 남원의 추밀사로 임명되었고, 요나라 진왕晉王과 위왕魏王으로 책봉되어 공신명호功臣名號를 받았다. 야율을신은 점차 제멋대로 굴면서 야율인선을 배제했고, 권력을 독점하자 발호하기 시작했다. 대강大康 원년(1075)에 황태자 야율준耶律濬이 황제의 조서를 받들어 조정을 통솔하면서 법령 제도를 정돈하고 정사를 공정하게 처리했는데, 이는 요나라 야율을신의 권세에 위협이 되었다. 그는 황후 소관음蕭觀音의 노비 단등單登과 교방敎坊의 영인伶人 주정학朱頂鶴을 사주해 황후와 영인 조유일趙惟一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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