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갤] 재수생 수능 부정행위 후기: 레전드 작문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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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 수능갤이 출처입니다. 제가 2번 읽었는데 ... 많이 답답하네요. ㅡㅡ;; 주의하며 읽으세요.



뭐 좋은 일은 아니지만 혹시 저 같은 학생들이 더는 안생기길 바라며 넋두리 겸 수능갤에 글 써봅니다. 세줄 요약 없어요.



우선 전 재수생이에요. 외고 졸업 후 자연계로 전과하면서 행복한(?) 재수를 시작했어요. 부모님도 해달란 대로 다 지원해주셨고 주변 친구들도 저한테 늘 응원 전화해주면서 그럭저럭 1년을 잘 보냈던 것 같네요.


수학 성적이 좀 문제였는데 9월에 갑작스럽게 포텐이 터지면서 저는 정말 마음 편하게 수능 연기를 아쉬워하며(오르비 수능갤 눈팅이나 했네요ㅋㅋ) 제 1년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수능 날. 과탐 과목을 다 마무리 짓고 저는 감독관실에서 조서(?)를 적고 왔어요.


한국사가 끝나고 과탐을 보기 전까지의 10분 동안 제가 있던 시험실의 분위기는 웃음이 넘쳤어요. 한 학생의 햇빛이 세다 라는 말에 감독관님이 작은 핀을 집어들고 커튼과 몸싸움을 하고 계셨거든요.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고, 저는 생명과학 대신 지구과학을 펼쳐 들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고의적이지 않았다고 말하기 위해 변명을 좀 해보자면 전 독재생이였고 지구과학을 더 쉬워했던 학생으로, 집에서 항상 그냥 왠지 모르게 지구과학을 풀고 그다음 생명과학을 풀어왔어요. 그래서 그 순간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또 당연하게 지과 시험지를 풀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3분 정도 지났을까요 학생들의 시험지를 체크하며 돌아다니시던 감독관님이 갑자기 제 시험지를 붙잡으시더니

'너 왜 이걸 풀고 있어?'

라고 말씀하시면서 제 눈을 몇 초간 빤히 바라보시더군요.


그 순간 뭐가 잘못됐다기보다 그냥 눈빛이 무섭단 생각밖에 안 들어서 저는 멍하니 있었어요. 그러자 감독관님이 제 시험지를 반으로 쫙 접어서 가져가시고 저에게는 생명과학을 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제야 제가 선택과목 순서를 혼동했다는 걸 인지하고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과탐 시험 전체가 무효(이때까지만 해도 과탐만 문제 될 줄 알았던 무식한 재수생...)되는 것 아닌가란 생각에 저를 지나쳐가시는 감독관님께 '저기...' 하며 쳐다보니 그분께서는

'빨리 정신 제대로 잡고 풀라고!'


하곤 가셨습니다. 그렇게 덜덜 떨며 문제를 풀다가 omr에 마킹하려 보니 카드 옆에 주의문이 있더라고요.


선택과목 순서 임의변경 시 당해 시험이 모두 무효처리가 된다 라는 그런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실감이 나더라고요, 아 이거 나 무효처리, 아 이거 나 부정행위.


그래서 그냥 실실 웃으며 마킹을 했습니다. 아 생명과학 어려웠어요 하하. 그리고 두 번째 과탐시간이 되었고 전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 지구과학 시험지는 감독관님이 가져가셨고 전 그냥 omr에 담담히 생과 답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3분 정도 지나고 감독관님이 제 시험지를 다시 들고 오셨습니다. 제가 풀다 만 시험지를 제 책상 위에 두고선 가시더라고요. 내가 심심해 보였나 라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그냥 턱을 괴고선 눈으로 슥 풀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히 문제를 보니 답이 보이더군요, 쿨럭... 오지훈 선생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굳이 마킹을 하진 않았습니다.


이미 무효처리 될 것임을 깨달았고 사실 마킹하다 보면 막 서러워져서 눈물을 쏟을 것 같았거든요. 다리-덜덜. 인간을 오르비에서 까는 글을 보고 맞아 맞아 했었는데, 전 이미 몸 전체-덜덜 인간이었고 거기에다 안구-덜덜 인간까지 될 순 없었어요(다급).


그렇게 과탐 시간이 끝났고 감독관님께서 짐을 챙겨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나가는데 뒤통수가 따갑더라고요.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나갔더니 부감독관(?)님께서 어깨를 두드리시며 말을 건네시는데 눈물이 팡 터졌습니다. 무섭다는 감정이 압도적인 것 같았어요.



시험본부에 도착하자 교육부에서 나오신 듯한,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세 분이 계시더군요. 다른 선생님들은 시험지를 큰 책상에서 정리하고 계시고요. 저와 같이 오신 감독관님이 상황을 설명하셨고, 세 분은 잘 못 알아들으셨습니다(응?).


계속 저한테 왜 바꿔 풀었느냐고 질문하시길래 혼동하였다고 거듭 말했지만...... (이해하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전 제가 부정행위 한 거 인정하는 바이고 무효처리하시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제가 왜 즉각 퇴실 조치 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살짝 있긴 했어요. 근데 그건 아마 주변 수험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감독관님께서 갑자기

학생이 문제지에만 풀고 답안지에 마킹하지 않았다

시험시간이 2, 3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제 2 선택 과목 시간에서 똑같이 2, 3분 후에 문제지를 돌려주었다

라는 말씀을 하시며 이것이 시험 전체 무효처리 정도의 사안인지 다시 확인해달라는 뜻을 비치셨어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무서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선생님들께서 서로 막 쳐다보시더니 저보고 저쪽 옆으로 가서 서 있으라 하셨습니다. 전 '부정행위'란 말의 무게에 쫄아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쪼르르 가서 서 있었고요.

그렇게 있다가 보니 말씀 나누시는 게 조금씩 들려왔어요.


그런데 그 말들이,

주변 학생이 다 보았느냐

소란을 피워 가져온 건 아니지만 아마 알 사람은 다 알 거다

뭐 이런 종류이길래 갑자기 막 한국 비리 영화들이 떠오르면서 이거 어디에 신고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ㅋㅋ 난 부정행위니까 무효처리를 하시오 라고 멋있게 말해야지 라고 고민하던 중 선생님께서

'너 부정행위니까 조서 쓰렴'

하시길래 앉아서 자세히 바른 글씨로 써나갔습니다.


이렇게 지금 차분하게 글을 적고 있지만 저때는 너무 무서워서 계속 울고 있었어요. 시험이 아쉽다기 보다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에서 오는 그 이상한 불안감 같은 게 있더라고요. 그렇게 적고 있었는데 앞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제 진술서를 보시고는 '어머 외고생이래요 어떡해', '어머 재수했대요 어떡해' 하셔서 뜻밖의 교무실 수치 플레이를 겪었네요.


그래도 결국 따스하게 사십 년 살아보니 몇 년 뒤처지는 건 별거 아니더라... 해주셔서 위로가......


따뜻한 물과 사탕은 감사히 받았어요.




사실 교무실에서 거짓말한 것이 있는데, 제 감독관님께서는 선택과목 순서를 유의하란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본인이 선택과목을 잘못 풀었죠?



방송도 제대로 들었죠?



감독관도 다 설명을 했을겁니다, 그렇죠?



본인이 부정행위라고 인정하는 거죠?


애초에 제 잘못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제 앞자리 학생이 햇빛 좀 막아달라고 안 했더라면 그래서 감독관님이 선택과목 순서 확인하라고 말해주셨더라면 하는 생각들이 자꾸 저를 슬프게 하더라고요.


저 때 당시에는 무섭기도 했고, 감독관님의 말 여부와 상관없이 부정행위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네' 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수능갤에 글을 적습니다. 저 같은 사람(멍청한 닝겐)이 혹시 있을지 모르니까요.


탐구과목 시험 볼 때 수험표 꼭 확인하세요. 본인이 생각한 순서가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수능 시험 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말 나 스스로가 이해 안 되는 이유로 혼동할 수 있잖아요. 아무리 확실하다 해도 그냥 한 번 보세요. 1초도 안 걸려요. 저도 당연히 지구과학이 먼저라고 생각을 했......

추신) 혹시 그때 저와 같은 시험장을 쓰신 수능갤러리 수험생분이 계신다면 죄송 하단 말을 전하고 싶네요. 조용히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는 있으니까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피해 보셨다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지만 정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추신2) 감독관님껜 감사드립니다. 그냥 제 입장에서 계속 확인해주셔서 감사했는걸요. 원망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추신3) 이제 더 이상 수능 보기 싫은데 고졸로 행복하게 살 수 있나여...... 알바도 안 받아주던데 엉엉 제 꿈은 조앤.Y.롤링이 되는 겁니다만.






디시인사이드 수능갤러리 간간이 들어가는데 이런 글도 간간이 읽습니다.

주작무새가 쓴 건지, 진짜 수능 커뮤니티 유저가 본인 경험담을 푼 건지 헷갈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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