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한글창제 맞음 (문종+만원권 지폐 비밀)

세종대왕이 한글창제 맞음 (문종+만원권 지폐 비밀)


한글 창제,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의 합작품?

실록 기록을 보면 1443년 12월 30일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것은 분명한데 과정이 기록되지 않아 실록엔 불쑥 나온 거나 다름없습니다. 세종대왕 한글창제 과정이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이 의구심이 들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언문 28자[조선시대 업적] 세종실록 언문


그리고 세종대왕 한글창제에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오해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기록이 성현의 용재총화입니다.


세종대왕께서 언문청을 설치하여 신고령(신숙주), 성삼문 등에게 명하여 한글을 만들게 하다 - 용재총화


용재총화 조선 성현 민간 풍습[조선시대 한글반포] 용재총화, 고려~조선 민간 풍습이나 역사책


사실, 한글 창제하는 시기에 신숙주는 일본에 있었죠. 게다가 둘은 어렸습니다. (신숙주 26세, 성삼문 25세) 

그래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 교과용 지도서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는데, 성현이 오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글창제 한글반포 조선 세종[한글의 우수성] 창제와 반포의 차이

즉, 세종대왕 한글창제가 아닌 해례 편찬 작업에 참여한 것을 창제로 잘못 이해했던 것이죠. 창제 후 반포까지 3년이 걸렸으며, 집현전 학자들은 반포 준비하는 작업에만 참여했었습니다.


1443년 당시 정인지가 집현전 대제학이었지만, 겸직이었기에 실질적인 책임자는 부제학인 최만리였습니다. 그러나 최만리를 비롯해 신석조, 정창손, 하위지 등은 한글에 반대했습니다. 설령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면 최만리가 모를 리 없었겠죠.


1443년 집현전 구성원 정창손[조선시대 업적] 1443년 집현전 최만리, 신석조, 정창손, 하위지


세종대왕 한글장체가 비밀이었던 이유?

최만리 반대 상소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사대부들은 한자가 아닌 문자 사용을 반대했습니다. 한자에서 벗어난 문명권을 오랑캐라 인식했는데 특히, 명나라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기에 비밀리에 진행하지 않았을까요.


비슷한 예로 효종 시기 북벌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엔 북벌 이야기가 거의 언급되지 않으나 실제론 진행이 되던 일입니다. 중국과의 미묘한 사항은 실록에 빠뜨렸기에, 훈민정음도 중국을 의식했기에 비공개로 제작한 것이죠.


한글 창제, 세자 문종의 참여 가능성?

이것도 최만리 반대 상소에 그 단서가 나옵니다. 세자인 문종이 업무에 정신을 쏟아야 하는데 언문에 빠져있음을 지적하는 표현이 있죠. 그렇다면 세자도 세종대왕 한글창제에 직접 참여했다고 볼 수 있죠.


정황상으로도 문종의 참여를 알 수 있어요. 창제(1443년)하고 반포(1446)하는 이 시기에 세종은 병환에 시달리느라 실록에만 50여 차례 병환 치료 기록이 남았습니다. 한글 창제 1년 전부터 문종이 대리청정을 했기에 직접 참여했음은 분명한 사실로 봐야 합니다.


세종대왕도 문종이 한글 창제에 참여했음을 해례본에 직접 남겼죠.


ㄱ을 설명하며 임금군君을 쓰고,

ㄲ을 설명하며 아기용虯을 쓰고,

ㅋ을 설명하며 즐거울快를 쓰고,

ㅇ을 설명하며 이루다業을 써서,


훈민정음 임금 군 세종[조선시대 한글반포] 임금 군과 기역 설명


훈민정음 조선 문종 아기 용[한글의 우수성] 세종대왕 한글창제


훈민정음 언문 즐거울 쾡[조선시대 업적] 훈민정음 반포


한글 창제 조선 문종 문학적[조선시대 한글반포] 일업자와 이응 설명


죽산안씨 대동묘 정의공주 세종 딸[한글의 우수성] 왕과 왕자가 즐겁게 일을하다. 문종의 참여


왕과 왕자가 즐겁게 일을 했다는 힌트를 남겼습니다. 문학적 장치를 통해 문종의 참여를 남긴 것이죠.

세종의 또 다른 자식들의 참여 가능성? (세종대왕 한글창제)

세종대왕의 딸 정의공주가 죽산 안씨로 시집을 갔는데 그곳 대동보를 보면, 이런 기록이 남았습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으나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상으로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


- 죽산안씨 대동보


정의공주묘 서울 도봉구 북한산[조선시대 업적] 훈민정음 조력자 정의공주


정의공주묘 훈민정음 문종[조선시대 한글반포] 정의공주묘, 서울 도봉구 북한산


능력이 있다면 정사에 참여하던 태조와 비슷하게 세종대왕도 자식들을 참여하며, 세종대왕 한글창제를 패밀리 비즈니스처럼 이끈 면도 있습니다. 


훈민정음 세종대왕 한글창제[한글의 우수성] 훈민정음 세종대왕


여러 가지 기록을 종합하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한글창제가 맞습니다.


ps. 만 원권 지폐에 담긴 비밀


만원권 지폐 훈민정음[조선시대 업적] 만원권 지폐 비밀


세종대왕 훈민정음 만원권 지폐[조선시대 한글반포] 한글자모 28자와 만원권 지폐 비밀


만 원권 지폐의 비밀 처음 알았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창제 맞음 (문종+만원권 지폐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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