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 종회 때문에 곤란해진 죽림칠현 혜강, 소인배의 질투

위나라 종회 때문에 곤란해진 죽림칠현 혜강, 소인배의 질투


위나라 종회 때문에 곤란해진 죽림칠현 혜강, 소인배의 질투[사마소, 종회] 조위 시절 종회는 아버지 종요의 인맥을 등에 업었습니다. 능력 또한 출중해 어려서 부터 명성이 높았지만, 속이 좁은 성격은 문제였습니다.


종회와 혜강의 겨루기 (죽림칠현 혜강은 무시하기 일쑤, 위나라 종회는 다가서기 두려움)

겨루기 1. 세설신어

종회가 사본론四本論의 편찬을 처음으로 마쳤을 때 그것을 혜공에게 한번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책을 가슴에 품은 위나라 종회는 이미 마음은 정했으나 그가 난색을 보일까 두려워 감히 꺼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혜강의 집 먼발치에서 책을 던져놓고는 급히 길을 되돌아갔다.


겨루기 2. 무시무시무시

죽림칠현 혜강은 큰 나무 아래서 한창 쇠를 단련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 향자기(향수向秀, 자는 자기子期)가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혜강은 끊임없이 망치를 내리치며 마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종회가 자리를 뜨려 하자 혜강이 물었다.


"무엇을 듣고 왔으며, 무엇을 보고 가시오?"


위나라 종회가 대답했다.


"들리는 바를 듣고 왔다가, 본 것을 보고 가네."


이후 위나라 종회는 사마소에게 이런 말을 한다.


"죽림칠현 혜강은 와룡과 같은 존재이니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공께서는 지금 천하에 두려워할 것이 없으나 바로 혜강이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혜강은 위로는 천자의 신하 노릇을 하지 않고, 아래로는 왕과 제후를 섬기지 않습니다. 세상을 얕보고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쓸데없는 짓거리를 벌여 세상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풍속에 해를 끼치기만 합니다.


옛날 태공太公이 화사華士를 주살하고 공자가 소정묘小正卯를 내친 까닭은, 그들이 자신의 재주만 믿고 군중을 현혹했기 때문입니다."



[광릉산, 위진남북조] 서진 혜강 초상[광릉산, 위진남북조] 서진 혜강 초상



혜강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한 기록


위키백과 : 혜강은 여손, 여안 등과 친했고 여손이 여안의 아내와 간통한 후에 불효하다면서 여안에게 그 죄를 무고해 가두게 했는데, 죽림칠현 혜강은 증인이 되어 의리상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사실을 밝힐 것을 보증했다.


이 일로 인해 혜강은 여손에게 절교하는 편지를 보냈으며, 위나라 종회가 사마소에게 이 기회로 혜강을 제거하라고 권하면서 혜강은 여안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1. 세설신어

혜중산은 동쪽 저잣거리에서 형을 받았다. 형이 집행될 무렵 그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문고를 찾아 광릉산을 연주했다. 곡이 끝나자 그가 말했다.


"원효니袁孝尼가 이 곡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아까워 가르쳐주지 않았더니, 이제 광릉산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태학생 삼천 명이 상소를 올려 그를 스승으로 삼도록 허락해달라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왕(사마소) 또한 후회하는 기색을 보였다.



[광릉산, 위진남북조] 거문고를 타는 혜강[광릉산, 위진남북조] 거문고를 타는 혜강


2. 세설신어 주注에 인용된 왕은王隱의 진서晉書

죽림칠현 혜강이 하옥되자 태학생 수천 명이 몰려와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때 뛰어난 인재들이 모두 혜강을 따라 감옥에 들어가니 이들을 설득해 돌려보냈다. 혜강은 결국 여안과 함께 주살됐다. (소인배 위나라 종회는 이 일로 신뢰도 잃음)



위나라 종회 등애소인배 종회 때문에 누명을 쓴 산악왕 등애


3. 진서

혜강이 동쪽 저자에서 형을 당하게 되자 태학생 삼천 명이 달려와 그를 스승으로 삼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혜강은 길에 드리운 해그림자를 보더니 거문고를 찾아 연주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옛날 원효니가 나를 쫓아다니며 광릉산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아까워 가르쳐주지 않았더니, 광릉산도 이제 끊어지게 됐구나!"


당시 그의 나이 마흔이었으니, 천하의 선비 중 이를 애통해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4. 세설신어 주에 인용된 문사전文士傳

죽을 때가 되자 형제와 친척들이 모두 찾아와 그와 작별을 나눴다. 죽림칠현 혜강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형에게 물었다.


"거문고를 가져다줄 수 있소?"


형이 답했다.


"가져오겠다."


혜강은 그것의 음률을 고르더니 태평인太平引을 만들었다. 곡이 완성되자 그가 탄식하며 말했다.


"태평인도 여기서 끊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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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by yowon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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