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소제 시기 上 권세가 곽광, 황제와 상관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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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소제 시기 上 권세가 곽광, 황제와 상관걸 사이에서


전한 소제 무제 유조곽광霍光은 한나라 때의 유명한 표기장군驃騎將軍 곽거병霍去病의 동생이다


곽거병이 도성으로 데리고 와 낭관부터 시작해 계속 승진해 봉거도위奉車都尉 광록대부光祿大夫가 됐고, 궁중에서 20여 년간 봉직했다. 그는 항상 신중했기에 어떠한 실수도 범한 적이 없어 군왕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한 소제가 즉위했을 때에는 나이가 여덟 살에 불과했기에 조정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고명대신 중의 우두머리인 곽광이 주재했다. 곽광 또한 신중하고 충성스러웠는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아예 궁중에서 살았다. 어디를 가든, 어디에 앉든 간에 규칙적이어서 조금도 바뀌는 경우가 없었다.


◆ 전한 소제 초기

이 때문에 소제가 어리기는 해도 나라는 태평했다.


이듬해에 곽광이 안륙후에 책봉되고, 상관걸上官桀은 안양후에 책봉되었는데, 이로써 곽광의 권세가 갈수록 강해졌다. 이때 이르러 마침 어떤 이가 곽광에게 진언했다.


"설마 대장군께서 고조 때에 있었던 여치의 얘기를 들어보지 못하셨겠습니까? 고조가 돌아가시자, 여치와 여씨 집안의 사람들이 전권을 휘두르며 유씨 종족을 임용하지 않아 천하 백성들에게서 명망과 인심을 잃어 결국 모두 주살 당했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고명대신 중의 우두머리가 되어 어린 황제를 보좌하시니 지위와 명망이 높으시고 권세가 막강하신데도 유씨 종실과 함께하지 않으시지 장차 어떻게 화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곽광이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


"선생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반드시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원왕의 손자 유벽강劉辟強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종왕에 책봉했다.



사극 운중가 속 한나라 소제 유불릉사극 운중가 속 한나라 소제 유불릉


태의감太醫監 충국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입궁했는데, 법에 따르면, 마땅히 사형에 처해야 했다. 충국은 상관안의 외조부로, 가장 총애받는 자였기에 상관걸上官桀이 곽광에게 도와줄 것을 청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상관걸은 하는 수 없이 개장공주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공주가 말 스무 마리를 내어 죄를 감하여 죽음을 면했다. 그 이후로 상관걸 부자는 곽광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으며, 개장공주에게는 감사했다.


상관걸 부자는 전에는 곽광과 마찬가지로 같은 고명대신이었는데, 지금은 사사건건 곽광의 제지를 받아 너무도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이에 그들은 궁중 안팎의 환관이나 대신들과 결탁하고는 기회를 틈타 곽광을 제거하려 했다.


특히 연왕 유단은 아직 아무런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었기에 불만이 가득했고, 어사대부 홍양의 자제들도 모두 자리를 잃어 곽광에 대한 원한이 깊어 개장공주에게 지원을 받았으니 상관걸로서는 이 모두가 틀림없이 자기편이 될 사람들이었다.



전한 상관걸 소제 후견인전한 상관걸 소제 후견인


◆ 상관걸 모함

바로 이때 곽광이 광명으로 가 우림군을 사열하게 됐는데, 상관걸이 정변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준비가 부족해 성공을 보장할 수 없었다. 이에 상관걸과 상홍양이 몰래 상의하기를, 연왕의 명의를 빌려 곽광을 탄핵하는 상서를 올리기로 했다. 상서에 이르기를,


"제가 듣건대, 대신 곽광이 우림군을 사열할 때 관리를 미리 보내 먹을거리를 준비하게 했는데, 마치 천자의 출행 의식과 같았습니다. 아무런 공도 없는 대장군 양창을 수속도위에 임명하고는 또 제멋대로 막부교위로 이동시키니 전권을 휘두르기가 방자합니다. 저는 그가 비정상적인 조처를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바라건대, 저의 부새를 조정으로 환수하여 궁 안에서 황상을 보위하고 간신들의 창궐을 막아 황상께서 화를 당하지 않게 하고자 합니다. 일이 긴박하므로 특별히 빠른 말을 골라 보내 황상께 바칩니다."


소제가 이를 보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는데, 곽광은 자신이 탄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 이튿날 입조조차 하지 않았다.



곽광. 전한의 유명 대신곽광. 전한의 유명 대신


곽광이 보이지 않자, 소제가 사람을 보내 입궁토록 했는데, 곽광이 입궁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관모를 벗고서는 사죄했다. 소제는 말했다.


"나는 그대의 죄가 없을 아니 관모를 쓰시오. 그대가 광명에서 우림군을 사열하고 돌아온 지 이제 열흘 남짓 됐는데, 연왕이 어찌 이를 알 것이며, 어찌 이런 쓸 수 있겠소! 게다가 그대가 충성심이 없다면 구태여 교위를 쓸 필요가 어디 있겠소!


이는 누군가가 장군을 모함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요. 내 비록 어리지만,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소."


신하들이 이 말을 듣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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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권도, 역사에 권력을 묻는다, 펑신, 김문, 승병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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