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 양나라 군대 - 살아남은 후경과 양무제 87화

후경의난으로 어지러운 위진남북조 시대 549년. 당대 역사가인 하지원何之元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양나라의 인민은 대부분 병사가 되어 농업을 버리고 병사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장관의 부하가 되어 악행을 저지르며 죄 없는 민중을 잡아들이고 선량한 사람들을 압박했다. 그로 인하여 인민은 유망하였고 도적은 더욱 횡행했다. 이런 상태가 몇 년이나 계속되었고 국가는 심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양나라는 한漢의 1군郡 보다도 적으나 태반의 사람이 부곡이 되어 경작하지 아니하면서 먹고, 누에를 치지 아니하면서 옷을 입고 혹자는 왕후를 섬기고 장수에 기대어 처자를 거느리고 동서로 따라다니면서 백성들의 것을 빼앗고 양민을 해치는 악당이 되어 죄 없는 사람을 잡아 묶고 어진 사람을 핍박하니 백성들은 유리하고 촌락은 황폐하였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화폐 정책 실패는 민심 이반으로 이어졌고 제후왕들이 야심을 갖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였던 셈이기도 하다.

어쨌든, 당시 소역, 소예, 소절, 소대심, 소각 등의 종친들이 무려 백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기병했으나 동탁을 토벌하려던 한나라 제후들처럼 자신이 입을 피해만 생각할 뿐 조정을 구해야겠다는 대의를 갖고 적극적으로 진군하는 이들이 없었다. 이들이 원하던 건 홀로 지존의 자리에 오르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양나라 조정도 진경지의 아들 진흔이 후경의 장수 범도봉을 설득해 투항토록 했으나 이를 크게 의심한 나머지 후경에게 진흔과 범도봉을 잃기도 한다. 구구절절한 아래와 같은 말을 했음에도 태자 소강은 믿질 않았었다.


"나(범도봉)는 곧바로 5백 명의 사람을 이끌고 투항할 것이오. 성 아래에 이르러 일제히 갑옷을 벗을 터이니 이는 조정이 용납해 줄 것을 바란다는 뜻이오. 일이 끝나면 반드시 후경을 격파토록 하겠소!"


그나마 진군하던 제후왕들도 강승, 종산에서 패하며 전황은 계속 병사가 적은 후경에게 유리했다. 당시 제후왕들도 후경에게 계속 패했던 것은 아니었다. 후경도 불안하여 석두성으로 보물과 미녀들을 옮기고 일이 틀어지면 도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존의 자리만을 원하던 제후왕들은 작은 피해에 연연해 하며 끝끝내 후경을 몰아붙이지 못했다.



양무제 태청 3년(549), 양간이 대성에서 사망했다.


그 당시 근왕군이 건강으로 몰려왔다. 형주자사 위찬, 당양공 소대심, 사주자사 유중례, 서예주자사 배지고, 선맹장군 이효흠, 남릉태수 진문철, 이전 사주자사 양아인 등이 유중례를 대도독으로 삼아 반격을 가한다. 후경이 먼저 위찬을 급습하나 유중례의 반격에 후경의 군사가 패배했고, 후경이 전에 함락시켰던 동부를 공격하여 함락시킨다.


그러나, 오래도록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양나라 장병들은 무기력했다. 좋은 기세를 타고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후경군의 매복에 당해 장병 5천이 몰살당하자 근왕군 전체의 사기가 떨어졌다. 대도독 유중례도 전장에서 상처를 입은 뒤로는 장막 안에서 술만 마셨다. 이후 건강성과 대성의 정부군이나 반란을 일으킨 후경군도 군량이 떨어져 약탈에 의존했다.


이 시기에 간신 주이가 숨을 거두자 많은 사람이 기뻐했으나, 양무제만은 슬퍼했다.


한편, 후경은 약탈로도 도저히 군량을 보충할 수 없자, 양무제에게 강화를 청한다.


그러나 앞서서도 언급했듯, 양무제와 태자 소강은 그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옳은 결정을 단 한 번도 하질 못한다. 후경의 강화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후경이 강화 뒤에도 군사를 물리지 않자 태자 소강은 근왕군과 종친들에게 군사를 물리라는 어이없는 조서를 보낸다.


이후에도 항구나 근왕군이 회복한 지역에서도 군대를 물리자 후경은 그나마 군량이 쌓여있던 동부로 이동해 그곳의 군량을 모조리 차지한다. 사실, 후경도 이렇게까지 상황이 좋아질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양무제의 태자 소강은 후경에게 서신을 보내 백하에서 강담원으로 물러날 것을 명했다. 후경은 다시 사림을 태자에게 보내 자신의 근거지인 수양성이 이미 점거되었으니 초주와 광릉을 수양 대신 떼어 주면 경구에서 강을 넘어 철군하겠다고 유인했다.


태자 소강은 이 또한 허락했다. 그런데도 후경은 철수를 끝내 미루면서 이같이 변명했다.


"영안후 소확과 직각장군 조위가 '천자가 비록 너와 강화하기는 했으나 우리는 반드시 너를 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말하며 저를 매도했습니다. 황상이 소확과 조위를 소환하면 저희는 즉각 포위를 풀고 퇴각하겠습니다!"


이 또한 허락했다. 양무제는 소확과 조위의 입조를 거듭 요구했다.


"후경이 강화한 후에도 오랫동안 포위를 풀지 않으니 그 뜻은 명확합니다. 지금 나를 부르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소!"


전장의 장수를 입조시켰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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