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기 요동군의 인구가 64,158호인데 81,714명으로 잘못 계산되어 있음을 고려하여 64,158호가 약 30만이 된다고 생각하면 요동, 현도, 낙랑에 약 60만명이 살고 있었다는 계산할 수 있다. 전편 : 고구려 인구와 영토, 당나라 백제 낙랑군과 전투 그러나 창해군으로 편입되었다는 남려의 예인 28만명의 행방이 묘연한 것이다. 이것을 맥족 계통인 부여에 의한 영토 확장에 따르는 인구 흡수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부여가 뒤에 고구려에 복속하게 되니 앞의 60만에 28민을 더해 88만명이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는 계산이 된다. 부여의 인구는 어떠하였는가? 위지 동이전(권300, 부여전)에 영토의 둘레가 2,000리라하고 인구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같은 크기의 땅에 30,000호가..
고구려 인구와 영토, 당나라 백제 낙랑군과 전투 고구려 인구1. 당나라, 백제 공격과 연정토 투항 (영토 크기) 출처 : 고구려 민족형성과 사회, 이옥, 1984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고구려의 둘레는 2,000리이며 이 안에 30,000호가 살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구당서 권 199 상, 고구려에는 7세기 중엽 고구려에 697,000호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 왕국이 7세기 동안 영토를 상당히 확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영토는 5세기 말경에는 북으로 농안, 남으로는 충청도, 서로는 요하, 동으로는 동해까지 뻗쳤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토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총인구수가 구당서에 전해지는 만큼 많았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한 호가 보통 4인에서 5인 정도로 구성된다. 위의 사료에 따르면 고구려의 인구는..
고구려 보장왕, 시호인가 이름인가 마지막 왕 궁금증 출처 : https://cafe.naver.com/historygall/69914 삼국사기에서는 분명히 고구려 마지막왕 보장왕에게는 시호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 보장왕의 보장이 시호일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해 본다. 고구려의 시법에 따르면, 한 예시를 들어보자. ■ 국강상 광개토경평안 호 태왕 고구려는 대(大)대신 주로 태(太)를 썼다. 따라서 대왕이 아니라 태왕이다. 물론 이게 황제격 명칭이라는 것은 아니다. 호(好)는 모든 왕에게 붙였다. 마치 중국에서 시호를 지을 때 이을 효(孝 :: 시법에서는 효도 효자가 아니다, 이을 효이다. 당연히 초대 황제는 제외된다) 를 꼬박꼬박 붙이는 것과 같다. '광개토경평안' 은 시호이다. 업적을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