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족 석륵, 위진남북조 시대에 왕미 세력을 흡수한 사건 [17화] 연주자사 구희에게 대패해 유연에게 몸을 맡겼으니 석륵이 큰 인물이라 판단한 유연은 그에게 장군의 직을 내렸고 전장터에서 공을 세우기를 10여 년, 마침내 노예 출신으로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석륵은 유연의 한나라 휘하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으나 처음부터 독립할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인망을 쌓는 데도 주력했다. 약탈은 물론이고 민간인을 함부로 죽이는 것을 절대 금했으며 기주를 함락한 뒤에는 군자영을 세워 문인들을 길러냈다. 석륵의 수하였던 장빈도 이런 군자영에 스스로 찾아간 인물이었다. 유총이 황제가 되자 석륵은 다시 정동대장군, 병주자사에 임명되었고 유총의 아들 유찬과 낙양을 칠 때, 양양으로 진격해 장강과 한수 이북의 거점을 얻어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