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황후를 축출한 승자 사마륜, 태자 사마휼의 억울한 죽음 [6화] 원강 9년(299), 가황후는 미남자로 유명했단 반악에게 태자의 필체를 흉내 내 모반의 글을 쓰도록 한다. "폐하는 응당 스스로 명을 끊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태자인 내가 대신할 수밖에 없다. 생모인 사숙비와 함께 날짜 안에 동시에 행하기로 약조했으니 의심하며 머뭇거리지 마라." 다음 날 아침, 가남풍 황제가 병이 났다는 이유로 태자에게 입조를 명했다. 가황후는 시비 진무를 시켜 술 3되와 대추가 가득한 쟁반을 들고 가 태자에게 마시게 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던 사마휼은 공복에 술을 마셨다가 실수할까 두렵다며 사양했다. 가황후는 당연히 질책한다. "너는 어찌 이처럼 불효한가? 부모가 술을 내려도 마시지 않으니 술에 무엇이라도 들..
사마의 막내 아들 사마륜과 가밀 사마휼의 대결, 강통의 사융론 궁중 암투로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강통은 사융론을 올리며 5호(흉노, 선비, 저족, 갈족, 강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괴이한 기풍으로 극도로 탐욕스럽기 그지없고, 흉포하고 사나운 데다 인정도 없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힘이 약하면 우리를 두려워하며 복종하나 강하면 곧바로 침략하며 반기를 듭니다... ... 지금 화하의 사서士庶가 저들을 업신여기자 그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반드시 틈을 보아 흉포한 성정을 드러낼 터이니 지금 저들이 피폐하고 우리의 무력이 성한 때를 이용해 저들을 원래 살던 곳으로 쫓아내느니만 못합니다." 사마의가 살아있었더라면 강통의 사융론을 받아들였을까? (특이하게 동진 16국 시대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훗날..
위진남북조02. 팔왕의난을 유발한 서진 황제 사마충 [사마유 억울함] 귀가 얇았던 진무제 사마염의 실수는 크게 아래와 같다. 이 실수로 위진남북조 시대(팔왕의난)가 시작되었다. 1. 사마염은, 부부의 금실이 좋아 양황후의 말만 듣고 사마충을 후계자로 선택했으며, 가남풍을 내치지 않았다.2. 사마염은, 귀가 얇아 가남풍을 맞아들이고 사마충의 어리석은 행동들을 애써 무시했다.3. 사마염은, 사마휼에게 큰 기대를 했는데, 그 이유로 가남풍이 사마휼을 타락하게 만든 뒤 죽였다.4. 사마염은, 훗날의 정쟁을 예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마충이 황제가 되면 사마염 생전처럼 가씨와 양씨는 손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또 한가지 추가하자면 동생 사마유를 억울하게 죽게 만든 일이다. 총명하며 가뭄이 들면 스스로 반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