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족 살호령을 내린 염민, 위나라 세우고 후조 멸망시키다 [24화] 석민 등의 한족은 호인들은 이들이 나가봐야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 되리라 판단하고 살호령을 내린다. 한족 장병들이 호인들을 도륙해 20여만 명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업성 인근 지에서의 도륙까지 합치면 그 수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한 이전에 기주 일대로 강제로 이주당한 수백만의 호인들도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도중에 서로 약탈과 살육을 일삼으며 굶주림과 병으로 쓰러졌다. 고향으로 돌아간 자는 열에 두셋에 지나지 않았으며 들에는 시체가 가득하고 경작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살호령에 격분해 여음왕 석곤이 태위 장거 등과 업성을 공격했으나 무예가 뛰어난 석민과 이농의 반격으로 패퇴하고 되려 대장 장하도 등을 잃..
후조 멸망 직전, 모용선비, 동진 환온 북벌, 석민 반란 [23화] 태녕 원년(349) 5월, 석호의 아들이자 정실 소생으론 둘째인 석준이 황위에 올랐다. 석준은 곧 석씨 일가를 요직에 배치하며 제후왕들을 위로한다. 유황후와 장시에게 살해당한 석빈의 아들 석연을 황태자로 삼고 석감을 시중, 석충을 태보, 석포를 대사마, 석곤을 대장군, 석민은 도독중외제군사로 임명했으며 자신이 보위에 오르도록 공을 세운 이농도 원래의 관직으로 복직시켰다. 당시 석준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종실 제후왕들 또한 많았다. 계성의 패왕 석충은 5만의 정병으로 업성으로 진군했는데 업성에 다다르자 군세는 10만에 육박했다. 석준은 석충에게 친서를 보내며 형제의 우애를 역설하며 중병을 거느리는 것을 승인한다 했다. 석충은 형제의 의를 생..
흉노족 한나라 전조 멸망, 갈족 석륵 및 조카 석호의 평양성 [16화] 광초 2년(319) 여름, 유요는 조서를 내린다. "나의 선조는 북방에서 일어났다. 광문제(유연)가 한나라 종묘를 세워 백성의 뜻을 좇았다. 지금 의당 국호를 바꾸고 선우를 선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호를 조로 바꾼 이후 진창, 초벽, 안정, 농성 등을 함락시키고 관중의 파족, 저족, 강족, 갈족 등을 제압했으며 태학과 소학을 세워 학자들 밑에서 수업을 받도록 했고, 궁실을 너무 크게 짓는 것이 옳지 않다 여겨 중단하기도 했다. 현명하게 내실을 다지던 유요는 광초 8년(325), 드디어 석륵의 조나라와 군사적 충돌을 시작한다. 석륵이 장수 석타에게 명해 상군을 쳐 3천여 명의 포로와 소와 양 등 가축 2만여 두를 빼앗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