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남북조 시대 전진秦은 부씨符씨 황제들이 다스린 나라다. 전진의 특징은 건국에서 멸망까지 지나치게 참언에 휘둘리는 경향이 짙었다는 것이다. 부견의 조부 부홍의 성은 원래 포蒲씨로 "초부응왕草付應王"이란 참언에 따라 성을 바꿨다. 포홍은 하남에서 거병했으며, 부견의 백부 부건은 황시 2년(삼진왕을 칭하던 당시의 연호, 352) 황제를 칭했다. 부홍(부견 할아버지)은 이후 6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며, 세자 부건(부견 큰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중원은 너희 형제들이 능힘 점거할 곳이 아니다. 관중의 형세가 좋으니 내가 죽은 뒤 서쪽으로 진격해 이를 취하도록 하라!" 환온의 2차 북벌 이후 부건은 몰래 관중 일대를 공격해 동진의 장수 두홍과 장선을 격파하고 장안을 도성으로 삼았다. 이미 독립 상태나 ..
한편, 평양까지 도주한 요양은 관중을 얻기 위해 부견과 싸우나 이내 패하고 포로가 된 뒤 살해된다. 요양의 동생 요장이 남은 병력을 추스른 뒤 부견에게 항복하니, 당시로선 "그 날, 그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이나 했을까. (위진남북조 시대에 큰 사건) (출처 : 위진남북조, 오호(五胡)의 쟁패 20 - Exodus) 목제 승평 5년(361), 5월 환온은 동생 환활에게 허창을 치게 하여 전연의 대장 모용진을 몰아내고 함락시킨다. 6월에 목제 사마담이 병사했으나 후사가 없어 성제 사마연의 장자 낭야왕 사마비가 보위를 이으니 그가 애제이다. 애제 흥년 원년(363), 전연의 군사가 낙양을 공격하자 환온은 구원병을 보내는 한편 낙양 천도를 주장하는 상주문을 올린다. 중원의 옛 영토 회복과 강남의 재산을 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