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 종회 때문에 곤란해진 죽림칠현 혜강, 소인배의 질투 종회와 혜강의 겨루기 (죽림칠현 혜강은 무시하기 일쑤, 위나라 종회는 다가서기 두려움)겨루기 1. 세설신어종회가 사본론四本論의 편찬을 처음으로 마쳤을 때 그것을 혜공에게 한번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책을 가슴에 품은 위나라 종회는 이미 마음은 정했으나 그가 난색을 보일까 두려워 감히 꺼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혜강의 집 먼발치에서 책을 던져놓고는 급히 길을 되돌아갔다. 겨루기 2. 무시무시무시 죽림칠현 혜강은 큰 나무 아래서 한창 쇠를 단련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 향자기(향수向秀, 자는 자기子期)가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혜강은 끊임없이 망치를 내리치며 마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종회가 자리를 뜨려 하자 혜강이 ..
위진남북조03. 가남풍의 정권 장악, 제거된 양준 일파, 석륵의 봉기 준비 초왕 사마위(진무제 사마염의 5남)가 입경한 지 얼마 안 된 「진혜제 원강 원년(291) 4월」, 서진 황제 진혜제 사마충은 이조와 맹관이 내민 조서에 서명했다. 백치 황제 사마충은 그 내용도 잘 모른 체 서명을 닦달하는 신하의 청에 못 이겨 일단 서명부터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양준을 위시한 양씨 일가가 모반을 획책했으니 이를 제압(도륙해라)하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양준이 모반을 꾀했다면 양황후를 먼저 찾았거나 양씨 일가의 누구라도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들으려 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남풍의 정치적 술수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곧, 조서의 내용대로 서진 초왕 사마위는 사마문에 군사를 배치하고 동안공 사마요는 금군을 이끌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