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도가 남정에 나섰을 때 태자 탁발황이 감국으로 있었는데 휘하의 도성이 탁발도가 총애하는 태감인 종애와 반목했다. 종애는 탁발도가 돌아오자 도성 일당의 죄를 날조해 보고했고 탁발도는 이에 도성 일당을 죽인다. 탁발황은 이에 병을 얻어 곧 사망하고 종애는 탁발도가 추궁할까 두려운 나머지 늦은 밤, 영안궁에서 자고 있던 탁발도를 죽였다. 황망한 5호16국 시대 영웅의 죽음이다. 다음 날, 황태자에 이어 황제가 죽자 황제의 손자 탁발준이 보위에 올라야 했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 상서좌복야 난연, 시중 화정, 시중 설제는 탁발도의 3남인 북위 진왕 탁발한을 옹립고자 했다. 그러나 종애가 미리 눈치채고 무장한 태감들로 이 세 사람을 죽인 뒤 탁발한 마저도 살해한다. 그리고 조서를 조작해 오왕 탁발여를 보위에 올..
고팔부古八部 시절 거란족과 선비족(북위), 거란과 북제 등국 3년(386년), 북위의 정벌로 인해 고막해와 분리된 거란족은 반세기가 지나면서 안정을 되찾았고 점차 세력을 회복하면서 북위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북위의 세조 탁발도 태연 3년(437)에 거란은 사신을 파견해 공물을 바쳤다. 태평, 진군 연간(440~450)에는 좋은 말을 매년 공납했다. 현조 탁발홍(466~470 재위) 시기에 거란족은 북위와 이미 여러 해 동안 왕래하면서 마침내 정식으로 승인을 받아 "여러 나라의 말석에 끼여 향응에 참가하는 지위를 얻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6세기 중엽까지 거란은 고팔부古八部의 연맹 단계에 해당한다. 고팔부의 명칭과 관련해 위서의 현조기와 거란전 및 책부원귀 요사의 영위지와 세표의 기록이 서로 일치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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