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원 4년(482) 3월, 위진남북조 시대 제나라. 무제(남제 무제 소색, 소도성 장남)는 유송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방관의 수탈을 막기 위해 보내던 검관(요즘으로 치면 감찰관)들이 지방관과 결탁하여 뇌물을 수수하는 행태가 많아 검관을 폐지했다. 조세를 포함해 건강으로 보내지는 많은 물자의 징수 방법과 수량도 법으로 정했으며, 조세 제도를 성공적으로 개혁하여 남제 중앙 정부의 재정이 풍부해졌다. 그러나, 예서를 잘 써서 천하에 독보적이었고, 조정 신하들의 찬사를 듣던 망나니 황태자 손자가 있었다. 소색과 소장무(소색 아들 문혜태자, 소소업 친부)의 편애를 받던 소소업이다. 제나라 소색은 즉위하자, 소소업을 남군왕에 임명하여 식읍 2천호 받도록 한다. 당시 나이 10살이었다. 호..
후조 대조천왕 석호의 태자 문제, 고구려 공격, 장안 증축 [21화] 후조 건무 3년(337), 안정의 후자광이 스스로 불태자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장군 석광에게 제압당한다. 후자광은 대진국(로마)에서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불교를 빙자하여 반란을 획책한 것은 특이하다 할 수 있겠다. 석호는 불교를 신봉하여 구자국 출신의 불도징을 크게 대우했는데 사공 이농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게 했고 조회가 열리는 날에는 태자와 여러 공작이 불도징을 부축하여 전각에 오르게 하는 등 후조 전역에서 불교를 숭상하는 문화를 스스로 만들었다. 불도징은 이후 석호가 황태자 석수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기도 했다. 같은 해, 석호는 대조천왕을 칭하며 석수를 황태자로 삼았다. 석수는 황태자에 책봉된 뒤 여인을 납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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