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조 대조천왕 석호의 태자 문제, 고구려 공격, 장안 증축 [21화] 후조 건무 3년(337), 안정의 후자광이 스스로 불태자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장군 석광에게 제압당한다. 후자광은 대진국(로마)에서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불교를 빙자하여 반란을 획책한 것은 특이하다 할 수 있겠다. 석호는 불교를 신봉하여 구자국 출신의 불도징을 크게 대우했는데 사공 이농에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게 했고 조회가 열리는 날에는 태자와 여러 공작이 불도징을 부축하여 전각에 오르게 하는 등 후조 전역에서 불교를 숭상하는 문화를 스스로 만들었다. 불도징은 이후 석호가 황태자 석수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기도 했다. 같은 해, 석호는 대조천왕을 칭하며 석수를 황태자로 삼았다. 석수는 황태자에 책봉된 뒤 여인을 납치, 강..
황위를 노리는 석호, 세상을 떠난 석륵 장빈 [19화] 이후 대인배 석륵은 금군 소대장인 한족 풍저가 실수로 갈족을 갈호羯胡라 부른 것에 대해 익숙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다며 넘어갔고, 참군 번원이 몇 년 전 갈족에게 도둑맞아 빈털터리가 됐다고 말하자 오히려 의복과 돈을 하사했다. 석륵이 노예 시절에 상당 지역에서 연못물을 놓고 『자주 다투었던 이양』이란 사람에겐 과거의 감정을 잊고 참군도위에 임명하는 등 동진의 조적과도 화친을 요청하며 국가 내부의 안정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북조의 5호 16국 황제 중 드문 성군이었다. 이런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문맹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뛰어난 통찰력으로 문맹의 벽을 넘어섰다는 것을 증명할 일화도 있다. 한번은 한서 강독 시간에 유방의 참모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