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지 천군만마 - 양나라 북벌군 낙양 함락 [75화]


(하음의 변) 당시 효장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몰랐으나 형인 원소와 동생 원자정이 병사들에게 끌려가 토막 나 살해되는 모습은 목격했다. 이에 효장제는 이주영에게 찬위할 생각이 있으면 그리하라 이른다. 이주영 휘하의 장수들은 이에 의견이 분분하였는데,


"제왕의 흥망과 성쇠는 무상한 법이오. 만일 천명이 장군에게 돌아간다면 장군은 응당 때에 맞춰 존호를 받아야 할 것이오."


휘하의 고환이 칭제할 것을 권했으나 거부한다.

위나라 신하 이주영

얼마 후 이주영은 본인이 저지른 짓이 너무나도 흉포하다는 것을 깨닫고 환궁한 이후 효장제를 향해 머리를 거듭 조아리며 벌을 줄 것을 요청했으나 효장제는 그리할 수 없었다. 당시 왕공 대신을 도륙하자 낙양의 백성들은 두려운 나머지 급히 도성을 빠져나갔다. 성내 인구는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무태 원년(528) 5월, 이주영은 북도대행대에 봉해졌고 두 마음이 없음을 맹서했다. 그러나 행동엔 거리낌이 없어서 조현 자리에선 말에 오르내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황후가 된 딸에게 자신의 활 쏘는 모습을 구경하게 하는 등 호인의 놀이를 궁궐에서 즐겼다. 북위 효장제도 억지로 활을 쏘며 즐기는 척을 했었다.


동시에 낙양과 인근 주둔지의 요직을 심복들로 채웠고, 이전에 반란을 일으켰던 갈영을 업성 인근에서 격파하며 대승상에 제수되었다. 이 공으로 아들 이주문수와 이주문창은 왕에 봉해진다.


528년까지 갈영 세력을 완전히 소멸하지 못하는 이주영, 북위


북위 하음의 변 당시 여남왕 원열, 임회왕 원욱, 북해왕 원호는 양나라에 투항했다. 당시 양무제는 원호를 위왕으로 삼고 진경지에게 병사 7천을 주어를 북쪽으로 호송케 했다. 남조에선 유유 이래로 처음 중원에 진출한 진경지가 출발하였다.


진경지

양나라 대통 원년(527), 양나라 진경지는 와양의 싸움과 이후 여러 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북위의 13개 성을 함몰시킨다.

북위는 진경지의 병사가 적어 별로 신경을 쓰진 않았지만 형성 함락 후 양국으로 진격해 7만의 북위 대장 구대천 마저 투항하게 하자 제음왕 원휘업에게 2만 병사로 고성에 주둔케 했다. 그러나 그도 패배하고 생포되고 말았으니 이주영은 심복 원천목과 종친 이주토몰아에게 30만 대군을 주어 저지케 한다. 진경지는 이에 장병들에게 이같이 말한다.


"우리는 줄곧 승리를 거두는 과정에서 적잖은 사람을 죽였다. 저들이 미처 도달하기 전에 성을 함락시켜야만 한다. 여러분은 호의하며 주저해서는 안 된다. 도주하는 순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필사의 심경으로 양나라 군사들이 형양성을 올라 마침내 함몰시켰고 북위 장수 양욱과 휘하 장령 37명을 참수했다.



얼마 후 원천목이 형양성을 포위했으나 진경지는 3천 군사로 북쪽에서 북위 군사를 대파했다.


원천목과 이주토몰아는 황급히 도주했고 여세를 몰아 호뢰로 나아가자 이주세륭은 성을 버리고 달아난다. 원호는 곧 낙양으로 입성했고 여세를 몰아 진경지는 대량과 양국 등을 함몰시켰다. 원천목이 4만 병사로 호뢰로 나아갔지만 2만의 병사로 선봉에 나선 휘하 비목은 원천목이 먼저 퇴각하자 그대로 진경지에게 항복한다.


북벌군의 한계

진경지는 고작 7천의 군사로 32개의 성을 함몰시키고 47회에 달하는 접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당시 진경지의 장병은 흰 도포를 입었기에 낙양 부근에서는 이런 민요가 나돌았다.


"천병만마千兵萬馬가 백포를 피한다네!"



그러나 낙양의 원호와 양나라 장병들은 곧 교만한 모습을 보이며 약탈하는데 열을 올렸기에 황하 이남의 항복한 지역 군민들의 민심은 돌아섰다. 또한 원호는 양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것을 원했고, 진경지는 낙양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둘 사이에서 반목이 일어났다.


당시 양나라 조정에선 원군을 파병해 함락한 지역을 공고히 지키려 했다.


"지금 하북과 하남이 모두 신 원호의 손에 장악돼 있습니다. 여러 주군이 새로 복종하게 되어 이들을 다독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양나라 군사가 위나라로 들어올 경우 민심이 동요될까 두렵습니다."


진경지는 고작 1만의 병사밖에 없었지만, 낙양엔 10만의 호인이 있었다. 원호에겐 병력이 없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 건 크나큰 실수였다. 양무제도 어리석게 상서한 내용을 듣곤 원군 파병을 멈췄으니 이들의 패망은 예견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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