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유물] 남부여 사비 시대 금동대향로 사택지적비 등

한성 백제 박물관에서 촬영한 사진이며, 백제의 초기 수도는 서울이었습니다. 우리 민족 최초로 서울에 수도를 정한 나라가 백제인 셈이죠.

 

▷ 문화의 꽃을 피우다. 웅진에서 사비 백제로

538년 백제의 성왕은 웅진熊津(공주)의 서남쪽 금강錦江변의 사비泗沘(부여)로 수도를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夫餘로 바꿨다. 사비기(538~660)는 백제 전체 역사의 18%에 해당한다.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122년간 5명의 왕이 즉위하였다.

 

나라 이름 남부여는 당시 적대 관계에 있었던 고구려에 맞서 부여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의식을 표명한 것이다.

 

사비 천도 후 백제는 중앙과 지방의 통치제도를 완성했으며, 불교 문화를 중심으로 다양하고 세련된 문화의 꽃을 피웠다. 특히 왜倭에 불교를 비롯한 여러 문물을 전해주었으며, 지금도 일본 곳곳에 사비 백제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사비문화
[백제 유물] 금동대향로. 사비문화

 

백제 금동대향로

국보 제287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사지. 높이 61.8cm

 

충청남도 부여 능산리 사지(남부여 시대)에서 출토된 백제 향로이다. 무게는 11.8kg이고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 뚜껑에는 23개의 산이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이 새겨져 있다.
  • 16인의 인물상, 39마리의 동물상이 표현되어 있다.
  • 나무, 바위, 산길,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있다.
  • 뚜껑 꼭대기에는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서 있는 봉황이 따로 붙어 있다.
  • 봉황 앞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의 향 연기가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 몸체는 활짝 핀 연꽃 모양이며, 연잎의 표면에 불사조,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 받침대는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물고 고개를 쳐들어 떠받치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표현되었다.

 

사비 백제의 이 향로는 중국 한漢나라에서 유행한 박산로의 영향을 받은 듯하나, 중국과 달리 산들이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뛰어난 조형미를 보인다. 백제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 등에 대한 이해를 돕는 귀중한 작품이다.

 

남성용 여성용 변기
[백제 유물] 남성용 여성용 변기

(왼쪽 남성용 변기, 충남 부여 군수리 출토)

(오른쪽 여성용 변기, 충남 부여 군수리 출토)

 

사비 백제 시대 목간
[백제 유물] 사비 백제 시대 목간

(목간, 충남 부여 궁남지 출토)

 

사비 시대 (남부여) 나막신
사비 시대 (남부여) 나막신

(나막신, 충남 부여 능산리)

 

청동 숟가락 젓가락
청동 숟가락 젓가락

(청동 숟가락, 젓가락. 백제 6-7세기. 충남 부여 능산리 출토)

 

▷ 사비 문화

사비泗沘(부여, 남부여)는 538년부터 660년까지 122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다. 성왕이 사비로 도읍을 옮긴 뒤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의자왕 등 5명의 왕이 차례로 즉위하였다.

 

사비기에는 백제 문화가 절정에 이르렀으며, 특히 불교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다. 백제의 불교 문화는 왜에 전해져 일본 불교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고, 천문, 지리, 역, 방술도 전해졌다.

 

사비 백제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부여

  1. 부소산성
  2. 관북리 유적
  3. 나성
  4. 능산리 고분분
  5. 능사지
  6. 정림사지
  7. 궁남지
  8. 왕흥사
  9. 군수리사지 등이 있고,

 

익산

  1. 왕궁리 유적
  2. 미륵사지
  3. 제석사지 등이 있다.

 

사택지적비. 사비 문화
[백제 유물] 사택지적비. 사비 문화

 

사택지적비

갑인년(의자왕 14년(654년)으로 추정) 정월 9일 내기성(奈祇城)사택지적

해가 쉬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달이 어렵사리 돌아오는 것이 서러워서,

금을 캐어 진귀한 집(珍堂)을 짓고 옥을 파내어 보배로운 탑(寶塔)을 세우니,

그 높디높은(巍巍) 한 자애로운 모습은 신령스러운 빛을 토하여 구름을 보내는 듯하고,

그 우뚝 솟은(莪莪) 자비로운 모습은 성스러운 밝음을 머금어...

(여기까지가 비석에 남아있는 부분이라 내용은 더 알 수가 없다. 출처 :『역주 한국고대금석문』(1992年))

 

사비 백제 시대 유물인 사택지적비 글자체는 구양순체로 새겨져있으며 문장은 육조시대의 사륙병려체를 따랐다.

 

사택지적비에는 "금을 캐어 진귀한 집을 짓고 옷을 파내어 보배로운 탑을 세웠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사택지적이 벼슬에서 물러난후 불교에 귀의 하려고 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또한 도교의 허무주의가 "해가 쉬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달은 어렵사리 돌아오는 것이 서러워서"라는 문구에 들어나는데 이를 통해 백제 후기에 도교도 곳곳에 전파 되었음을 알수가 있다. 다른 유물로는 부여에서 발굴된 산경전山景塼에는 도교를 상징하는 삼신산三神山이 그려져 있었다.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중이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제 제 101호였으며 2014년 10월 20일에 보물 제1845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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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성백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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