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 97년 : 동진 멸망, 마지막 황제 사마덕문 [51화]
- 한중일 역사/위진남북조 100화
- 2020. 1. 31.
왕진악 죽음
위진남북조 시대, 장안에서 두 군대가 합세하자 심전자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왕진악이 남방 병사를 몰살하고 장안에서 모반을 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병사들이 서로를 의심했고, 왕진악은 심전자의 요청으로 부홍지의 대영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부홍지는 없고 심전자가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곧이어 심씨 일족인 심경인이 왕진악의 목을 베고, 왕진악의 형제와 사촌 등 7명을 더 죽였다.
"유태위의 명을 받아 모반을 주도한 왕진악을 주살했다!"
부홍지는 심전자가 졸지에 자신의 영채 안에서 왕진악을 죽이자 매우 놀라 유의진에게 알렸다.
막료장 왕수 등은 심전자 일행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장안성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아무 까닭 없이 대장을 죽인 죄로 그의 목을 베었다. 부홍지가 지양에서 혁련괴의 기병을 격파하고 과부도에서 대하의 군사를 깨뜨려 한숨 돌리게 되었으나 이미 관중의 동진 북벌군은 오합지졸로 전락해버렸다.
12세의 유의진은 이후 위진남북조 막장 송왕조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어린놈이 벌써 돈을 밝히며 소인배를 가까이했다. 사실상 관중을 통솔하던 왕수가 유의진 주변 소인배들의 뇌물 루트를 차단하자 왕수가 모반을 꾀한다며 모함했다.
유의진은 이를 믿고 왕수를 죽인다. 그리곤 포판, 위북 등의 각 거점을 지키던 병사들을 장안성으로 불러들이는 우매한 짓을 하니, 유유는 괴은을 장안으로 보내고 유의진을 건강으로 불러들인다. 이어서 주령석과 주초석을 추가로 보내며 관중 일대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뒤늦은 노력을 시도한다. 그러나 북벌군은 이미 오합지졸이었다.
유의진 생환
의희 14년(418) 말, 주령석이 장안에 도착해서야 유의진과 장안의 군사들이 크게 약탈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진과 후진의 오랑캐들도 하지 않은 짓을 한족인 동진에서 일으킨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혁련발발은 3만 군사로 유의진을 추격케한다. 위진남북조 시대 답게 당연히 많은 보물과 미녀들로 인해 행군은 느렸고 대하의 기습을 받아 부홍지와 괴은은 죽고 모수지는 투항했으며 수만 명의 동진 군사가 몰살당했다.
유의진은 풀숲에 몸을 숨겼다가 한밤중, 홀로 말을 타고 몰래 구하러 온 중병참군 단굉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이후 관중을 지킬 수 없었던 동진은 얻어낸 영토를 다시 잃는다. 애초 유유가 남겨두었던 왕수, 왕진악, 심전자, 모덕조, 부홍지는 이때 모두 죽었다.
유유는 장군들이 모두 패했고 아들 유의진의 생사조차 불분명하자 재차 북벌에 나서려 했으나 유의진이 무사하고 여러 제장들이 반대해 그만두었다. 당시 유유의 나이는 55세로 노년에 이르자 찬위의 속도를 올린다.
[중국 유유 송나라] 동진 안제 사마덕종
동진 멸망, 유송 건국
의희 14년(418), 안제(사마덕종)를 동당에서 목을 매달아 죽이고 동생 사마덕문을 보위에 올리니 마지막 황제인 공제이다.
공제 원희 원년(419), 유유는 송왕에 봉해지고 수도 건강에선 중서령 부량이 선양 준비를 시작한다.
공제 원희 2년(420), 6월 유유가 건강에 군사를 배치하며 공제의 선양 조서를 받아든다.
"환현이 즉위했을 때 진나라는 이미 망했다. 지금 나라를 송왕에게 바치는 것이야말로 실로 바라던 바이다!"
공제를 영릉왕으로 삼아 말릉현으로 옮겨 가게 한 뒤 중병을 보내 엄히 감시했다.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 첫 왕조의 멸망과도 같았다.
[중국 유유 송나라] 동진 공제 사마덕문
공제는 이듬해 불교도라 자살은 하지 못하니 죽여달라 요청해 유유가 보낸 병사들에 의해서 질식사한다.
"불교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은 다시 인간의 몸을 얻지 못한다고 했다."
특이하게 서진과 동진의 말기엔 백치 황제가 등장했으니 역사상 전무후무한 특이한 일이다.
[5호16국 시대 북위 탁발선비] 대국 시절의 형세도. 전진, 전연, 동진
유유가 420년 6월에 보위에 오르니 그가 송나라 무제다.
동진은 317년 낭야왕 사마예가 건립했고, 11대를 거치며 97년간 존속하다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