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제 위기! 북벌과 자식 농사 실패가 불러온 후폭풍 [59화]


북위 vs 송나라

원가 27년(450), 양양, 수양, 팽성 등에 황자들을 부임시키며 북벌의 의지를 굳건히 세워 두었었던 문제가 왕현모를 필두로 두 번째 북벌을 시도한다.


이때, 유송 문제는 여러 문인 귀족들과 회의 중이었는데 글자도 못 읽고, 책에는 손도 댄 적이 없던 골수 무인 심경지가 문제에게 직언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예컨대 집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밭일은 머슴에게 맡기고,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시키는 법. 폐하는 지금 적국을 치려고 하면서 백면서생들과 일을 의논하고 있으니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유송 문제는 웃으며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북위 태무제 탁발도의 대대적인 송나라 공격과 시기가 겹쳐 북벌군은 되려 수세에 몰린다. 공격에 나선 병사가 수비를 맡은 것이다. 북위군은 하남 일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남진해 장강 북안까지 이르렀다.


같은 해 12월엔 탁발도가 건강의 맞은편인 과보산에 오르자 수도 건강 백성들은 피난 준비에 바빴으나 설안도, 노방평, 장창, 장질, 심박 등이 분전한 까닭에 북위는 곧 물러났다. 마침 우기로 접어들었고 송나라가 견벽청야 전술을 구사했기에 북위군으로선 퇴각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위나라 군사가 남연주와 서주, 연주, 예주, 수주, 기주 등 6개 주를 공파했다.

죽은 병사의 숫자는 셀 수조차 없었다.

이들이 지나간 군현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모든 마을이 황량해지면서 원가의 정사 또한 쇠해지기 시작했다."


원가의 치로 유명한 유송 문제 유의륭도 자식 농사엔 실패했다.


태자 유소와 무당 엄도육

유송 문제 시해한 황태자 유소, 황제가된 효무제 유준 [57화][위진남북조 시대 막장 남조 시작]


유송 문제의 태자 유소는 누나 동양공주의 시비 왕앵무의 소개로 무당 엄도육을 만났는데, 엄도육은 아마도 요즘의 마술과 비슷한 것들로 유소의 환심을 사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시흥왕 유준浚은 문제가 총애하던 반숙비가 낳은 아들로 태자 유소와 함께 문제 유의륭이 죽기를 기원하는 짓을 벌였다.


유송 문제가 죽어야 유소가 보위에 오르니깐...


한편 동양공주의 노복 진천흥은 시비 왕앵무와 사통하던 사이였는데 동양공주가 병사하자 왕앵무는 이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유소에게 진천흥을 죽이게 했다. 이에 유의륭 저주를 함께하던 경국이 자신도 죽일까봐 (왕앵무가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죽일까 봐) 두려워 모든 사실을 문제 유의륭에게 알렸다.

유송 문제 시해되다

유송 문제 유의륭 죽음[위진남북조 시대 막장 남조 시작]


대경실색한 문제는 이날 밤, 상서복야 서담과 태자 폐위, 유준 사사의 문제를 논의했다. 이전에 이미 유준을 사사하려 했으나 반숙비가 나를 먼저 죽이라는 둥 강하게 거부하자 시행되지 않았었다. 또 한 번의 기회는 없으니 유준은 죽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때 문제는 남평왕 유삭, 수왕 유탄, 건평왕 유굉을 다음 황태자의 후보로 삼아 서담지 등과 매일 논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유준의 폐위와 사사 얘기를 반숙비에게 흘리자, 개망나니도 아들이라고 반숙비는 유준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유준은 다시 유소에게 이를 알렸고 유소는 기습을 결정했다.


급히 입조하라는 조명을 위조하여 합전 위로 올라간 유소는 심복 장초, 진숙아 등을 이끌고 마침 숙면 중이던 문제를 살해한다. (위진남북조 시대 453년)



이어 좌우에 명해 반숙비의 배를 갈라 그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게 했다. 반숙비의 배를 가른 자들이 돌아와 보고했다.


"반숙비의 마음은 사악합니다!"


태자였던 유소는 곧 즉위하여 후환을 없앨 용도로 장사왕 유근 등 종실들을 대거 주살했다. 남조의 "형제 죽이기" 문화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무릉왕 유준, 군사를 일으키다 (유송 문제 셋째 아들)

유송 문제 효무제 유준[위진남북조 시대 막장 남조 시작]


얼마 후 유의륭의 3남인 무릉왕 유준駿(반숙비의 아들은 유준浚)이 기병하자 심경지, 유원경, 장질, 유의선 등이 호응했다. 유소가 항전했으나 성내의 장병들이 도주하자 보국장군 주수지 등은 손쉽게 건강을 함락시키고 유소를 결박했다. 문제를 살해한 장초는 배가 갈라지고 몸이 가루가 되도록 도륙되었다.


무릉왕 유준이 입경하자 먼저 유소의 네 아들의 목이 베어졌다. 이에 유소는 동생 남평왕 유삭에게 탄식했다.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송나라 황실이 서로 죽이다가 이런 지경에 이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당시 시흥왕 유준은 도주하던 중 황숙 유의공에게 붙잡혀 목이 베이고 유소와 유준의 시체는 강물 속에 던져졌다. 두 사람의 자녀와 시첩 등도 사사되었으며 엄도육, 왕앵무도 죽을 때까지 채찍을 맞고 불에 태워졌다가 강물에 버려졌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이 나면 막장 남조의 역사는 설명되지 않는다.


자식 교육 실패한 유송 문제, 후폭풍

유송 지도 백제 북위[위진남북조 시대 막장 남조 시작]


문제 유의륭의 셋째 아들인 효무제 유준도 좋은 인물은 아니었다. 애초 유소는 유준을 죽이려고 심경지와 안준을 보냈으나 되려 두 사람은 숙부 유의선, 유의공, 대신 장질을 끌어들여 거병을 촉구했었다.


유준은 보위에 오르자 숙부 유의선의 딸들을 모두 간음케 했고 시도 때도 없이 죽인다며 위협하다 유의선과 장질의 모반을 야기했다. 어렵사리 이들의 반란을 제압한 뒤 일족을 도륙한다. 그리고 안준은 하옥시킨 뒤 두 다리를 잘라 앉은뱅이로 만들고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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