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음공주 유초옥 유자업 잇는 유욱. 송나라 어쩌나... [60화]

후폐제 유욱 즉위막장의 대명사 위진남북조 시대 송나라


효무제는 조세를 포탈하는 관료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 시기 유송은 재정이 악화되어 갔다. 또한 문벌귀족은 노력하지 않아도 고관에 오르나 한문, 서민들은 출세길이 막혀 서진 말기처럼 현학이나 풍류를 추구하는 행태가 악화하었다.


따라서 관료들의 업무는 항상 지체되었고 국가 운영은 말단 관리들이 담당하게 되어 유송은 내부가 흔들리게 된다.


국가의 내부 문제를 악화시킨 효무제 유준은 35세의 나이에 병사하고 태자 유자업이 465년 정월에 뒤를 이으니 그가 전폐제이다. 그 유명한 유.자.업.

유송 전폐제 유자업은 어려서부터 조급하고 포악했는데, 하루는 어머니 왕태후가 병이 위독해지자 아들인 황제가 보고 싶다며 불러오게 했다. 그러자 유자업은 이렇게 말했다.


"병자의 방에는 귀신이 많은데 어찌 갈 수 있는가!"


이 말을 들은 태후는 크게 화를 냈다.


"칼을 갖고 와서 나의 배를 갈라라. 저렇게 비린내 나는 아이를 어떻게 낳을 수 있었는가!"


며칠 후 한을 품은 왕태후는 죽었다.


전폐제 유자업 폐위, 송명제 아들 후폐제 유욱 즉위 [58화]산음공주 파트너들


대법흥, 유의공 살해

전폐제 유자업은 상서좌승 순만추에게는 옥, 금, 상아, 가죽, 나무로 만든 황실 전용 수레를 만들게 했는데 장식은 새의 깃털로 꾸몄다. 재위와 동시에 사치를 시작한 것이었다. 직언을 일삼던 대법흥은 황제의 칙서를 포함한 조정의 제반 문서를 총괄함으로써 권력을 행사했는데 이런 대법흥이 유자업의 비행을 자주 막아섰다.


당연히 유자업은 그를 면직시키고 귀양 보낸 뒤 죽음을 내렸다. 이후에도 망령된 행동을 하자 유자업의 작은 아버지인 태재 유의공을 세우고 유자업을 폐출시킬 계획을 짜던 신하들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유자업은 금군을 인솔하여 유의공의 팔다리를 절단하고 눈알을 후벼판 뒤 죽였다.


산음공주 유초옥

전폐제 유자업 폐위[산음공주 유초옥] 막장의 대명사 위진남북조 시대 송나라

전폐제는 여동생 산음공주 유초옥에게 미소년 30명을 첩으로 준 것으로 유명한데 그녀는 황제인 오빠 유자업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첩과 폐하는 남자와 여자여서 비록 다르지만, 함께 먼저 돌아가신 황제(효무제 유준)의 몸을 의탁하여 태어났습니다. 폐하께서는 6궁에 있는 궁녀가 만여 명을 헤아리나, 첩은 오직 부마 한 명이니 일이 아주 공평하지 못합니다."


효무제 유준과 문목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고 전해진다. 부마도위 하집과 결혼했으나 남색을 밝히던 그녀는 동생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하고 30명의 남첩을 갖게 되었다.


시해된 전폐제 유자업

송명제 아들 전폐제 유욱막장의 대명사 위진남북조 시대 송나라


즉위해인 영광 원년(465) 10월, 문제 유의륭의 아들이자 유자업의 작은 아버지인 남평왕 유삭의 비 강씨를 때렸다.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서로 음행을 일삼으라 지시했다. 그러나 강씨는 거절했고 유자업에게 폭행당한 뒤, 아들 셋의 죽음을 그 자리에서 직접 봤다.


그해 11월, 죽림당에서 귀신 형상에 활을 쏘던 그는 수적지, 강신지, 순우문조 등에게 살해된다.


온갖 음행과 폐퇴한 짓을 벌이던 전폐제 유자업에게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동생 산음공주 유초옥도 얼마 후 남첩 30명과 함께 살해되었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 19세였다.


송명제 유욱 즉위

송명제 유욱 송나라막장의 대명사 위진남북조 시대 송나라

전폐제 유자업에 이어 보위는 유준의 열한 번째 동생 상동왕 유욱이 뒤를 이으니 그가 송명제이다.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효무제의 셋째 아들인 유자훈이 명제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켰는데, 양, 익, 예, 광, 서, 기, 청, 사주에서 유자훈에 호응했으나 고작 10살의 유자훈은 전선을 길게 유지할 힘이 없었다.


1년 만에 반란은 진압되었는데 효무제 유준 시절에 심한 차별을 받던 한문과 출세길이 막힌 여러 호족이 연루되었다. 이들에겐 기존 체제를 붕괴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강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욱은 신하들에겐 너그러웠으나 황족들을 지나치게 의식해 형인 효무제 유준의 아들 28명 중 16명을 죽인다.


나머지 12명은 후폐제 유욱이 살해하니 유준의 대는 끊기게 된다.


유욱은 유자업 만큼은 아니었으나 그도 기행을 벌인다. 총애하던 신하 이도아에게 진비를 하사한 적이 있었는데 진비가 임신을 하자 그녀를 다시 황후로 삼아 대를 잇도록 한 것이다. 아들이 없었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유씨 친족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도아 아들 후폐제 유욱 즉위

위진남북조 유송 역사막장의 대명사 위진남북조 시대 송나라


이후 명제 유욱도 사망하고 472년 이도아의 아들 유욱昱이 뒤를 이으니 그가 후폐제이며, 10세에 황제가 되었는데 전폐제 유자업 만큼의 막장 짓을 벌인 황제였다.


이전에, 송문제 유의륭은 30년 재위 기간 나라를 잘 다스려 송을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지만, 말년에 북벌 실패우매한 반숙비를 총애한 나머지 목숨을 잃는다. 또한, 그 이전에 이미 자식 농사에 실패했기에 앞으로 송나라에 남은 건 막장 황제들의 막장 짓밖에 없었다.





댓글(0)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