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절민제 즉위석 달 후, 건명 2년(531), 이주씨 일족은 광릉왕 원공을 새로 옹립하니 그가 위진남북조 시대 절민제이다.이주천광은 관우, 이주조는 병주와 분주, 이주중원은 서주와 연주를 점거했고 이주세륭은 조정을 장악했다. 이전에 이주영에게 칭제를 권했던 고환은 이미 수만 명의 지휘권을 얻은 상황이었으며, 위진남북조 시대 발해군의 고건 형제, 봉씨 일가, 범양 노씨 일가, 조군 이씨 일가들의 사병과 연계를 성사시켜 이주씨 타도의 총수로 추대된다. 중흥 2년(532) 초, 고환은 효장제 살해를 이유로 군사를 일으켜 효무제를 옹립하고, 광하에서 이주씨 군사를 대파한다. 고환은 전마 2천 필에 병사 3만에 지나지 않았으나 휘하 고오조가 분전해 업성의 이주씨 20만 대군을 대파했고, 4월엔 곡사춘이 하교를..
북연이 혼란스러운 위진남북조 시기, 탁발도는 북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가해 10여 개 큰 군을 먼저 손에 얻는다. 풍홍은 송나라에 칭신했으나 송나라도 별수가 없었다. 북위 연화 2년(433), 풍홍은 용성 아래에 북위군이 진을 치자 몰래 고구려로 도망쳤으며 북위군은 용성을 불태운다. 풍홍은 이후에 송나라로 도망치려 하거나 황제 노릇을 하려 했기에 고구려 장수왕에게 일족과 함께 주살 당한다(437년). 이전에 동생 탁발고를 인질로 잡아 두었다가 살해한 정동과 부고패의 5족도 도살했다. 이후 등장할 유명한 북위의 풍태후는 풍홍의 손녀이기도 하다. 탁발도의 북방 통일을 위해 남은 건 북량 정벌뿐이다. 북량은 옛 전진의 신하 여광이 세운 후량의 후신으로 여광의 부하 저거몽손은 여광을 배신하고 단업을 양왕凉으..
북위 문소황후 일가, 발해 고씨인가 고구려 고씨인가? 출처 : 고구려 유민 북위 문소황후 일가의 비지(碑誌) 연구, 민경삼 [링크]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북위 문소황후(고조용)의 5대조인 고고高顧, 고무高撫 형제가 영가의난에 고구려로 피난한다. 그 후 북위 헌문제獻文帝 때에 고무의 손자 고잠高潛은 돌아가 요동에 거하게 되고, 고고의 4세손인 고양, 고승신도 효문제 때에 북위로 들어간다. 고양의 딸과 손녀는 북위의 황후가 되고, 고양의 아들 고조와 손자 고맹은 부마가 된다. 고조는 당시 상서령의 지위에 있으며 조야의 전권을 행사한다. 고고, 고무의 친족은 여러 대에 걸쳐 고구려에 살았다. 그중 일부는 북위로 갔으며 일부는 고구려에 남게 되었다. 이 기록은 대다수의 학자들이 위서나 북사 속의 고구려 관련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