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문제 천강 원년(566) 4월, 진나라 진문제가 사망하자 태자 진백종이 뒤를 이었으니 그가 진폐제이다. 진백종은 작은아버지 진욱을 표기대장군, 사도, 녹상서사, 도독중외제군사에 임명했다. 중서사인 유사지, 상서복야 도중거, 동궁통사사인 은불녕 등은 진욱의 권세가 지나치게 비대하다고 생각해 양주로 내보내길 권했다. 진욱은 임지로 떠날 준비를 했으나 모희가 그에게 떠나지 말 것을 권했다. 진욱은 애초에 모반의 뜻이 없었으나 진폐제의 막료들이 심태후를 속이면서까지 자신을 사사할 것을 청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진백종이 이를 허락하자 진욱은 유사지 등을 죽이며 조정을 장악한다. 진선제 진욱 즉위 (진후주 진숙보 아버지) 진폐제 광대 2년(568) 말, 진욱이 황태후의 명으로 진폐제를 내쫓고 자신이 보위에 오르니 ..
위진남북조 시대 말기. 북주가 북제를 멸망하기 직전, 이 당시 북방에선 유연이 멸망하고 돌궐이 부상했다. 위진남북조 시대 유연과 돌궐 서위 폐제 원년(552), 회황진 일대에서 유연이 돌궐의 공격을 받아 아나괴 가한이 자결하고 그 아들 암라진이 남은 백성들을 이끌고 북제로 도망간다. 또, 남은 백성들은 아나괴의 숙부인 등숙자(유연의 마지막 가한)를 왕으로 세운다. 비슷한 시기에 1대 돌궐 가한인 토문이 죽고 아들 과라가 뒤를 잇는다. 또, 그 뒤는 아들 사근이 잇는데 그가 목간가한이다. 사근은 바로 등숙자를 격파했고, 등숙자가 남은 백성들을 데리고 서위로 도망가자 유연은 마침내 멸망하게 된다. 돌궐의 존재는 북주와 북제에게 중요했다. 이전에 북주는 유연에 공주를 시집보내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었고, 이 ..
위진남북조 시대, 오랜 전란으로 전통 귀족들이 주살 또는 도륙을 당해 세가 약해졌으나, 부를 많이 축적한 이들의 권세는 오히려 강해졌다. 고위는 화사개 같은 은행들을 통해 자신도 많은 부를 축적했다. 또한, 고위는 목황후의 시비였던 풍소련을 총애해 항상 그녀와 함께 다니며 사치를 일삼았다. 후세의 사가들이 북제는 풍숙비 때문에 망했다는 말을 하는 이유다. 무평 2년(571), 고위의 어머니 호태후의 음란행위가 드러났다. 승려들을 총괄하던 사문통 담헌과 통정했던 것이었다. 고위는 처음 어머니의 이런 일탈 행위를 믿지 않았으며, 호태후 근처의 여장 비구니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이 발각되자 호태후 근처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그녀를 고립시켰다. 두 명의 황후 무평 4년(573), 위진남북조 ..
고환의 동위는 선비족과 한족 간의 갈등이 컸다. 선비족 고관들이 한족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고환의 총애를 받던 고오조는 휘하의 선비족 장병들 속에 한인들이 섞여 있으면 고환에게 요청해 이들을 다른 부대로 이전시키는 등 당시 선비족 대장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일화를 몇 가지 남겼다. 한번은 황하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물에 빠져 죽자, "한 푼의 가치도 없는 한인들은 죽게 놓아두어라!" 라는 말을 했다. 고환도 이를 타개하려 시도는 했지만, 동위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이는 해결되지 않았다. "한인은 너희 노복이다. 남자는 너희를 위해 경작하고, 여자는 너희를 위해 옷을 만든다. 곡식과 비단을 세금으로 내 너희를 따뜻하게 먹이고 있다. 왜 그들을 업신여기는 것인가?" "선비족은 너희가 고용한 용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