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연 멸망 후 건국된 북연. 고구려 출신 고운 [56화]


태무제 유연 공격

태무제 탁발도는 대하를 멸망시킨 뒤 유연을 공격하려 했으나 대다수가 반대하고 최호만이 찬성했다.


"저들이 방심하고 있는 지금 여름의 허를 틈타 정벌하지 않으면 후에 반드시 더 큰 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남적(송나라)은 고려할 필요가 없소. 전에 유연을 칠 때 남적은 말로만 우리를 친다고 했을 뿐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소."


태무제 탁발도와 다른 대신들에게 이런 말을 하자 태무제 탁발도는 최호의 의견을 좇는다. 위진남북조 시대 유연은 북위의 골칫거리여서 공격에 나선다.

신가 2년(429) 여름, 유연은 사방으로 흩어져 방목하고 있던 까닭에 각개격파 당한다. 북위군은 동서 5천 리, 남북 3천 리에 걸친 추격전을 펼쳐 포획한 사람과 노획한 말과 소 등의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승리를 거둔다. 유연에 복속했던 고거족들도 유연에 반기를 들어 북위에 투항하니 이때 북위에 투항한 자들만 대략 30여만 호에 달했다고 한다.


이후 북쪽 변경 3천여 리에 걸쳐 장성을 수축하고 6개 진을 설치한다.

북위 말, 이주영, 고환 등이 힘을 키운 바로 그 6진이다.



선비족 북연 공격

관중과 북방을 정리한 태무제 탁발도는 동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당시 동쪽엔 북연이 있었는데 북연은 내홍으로 이미 국력이 크게 쇠한 상태였다. 애초 모용수의 태자로 보위에 오른 후연의 모용보는 북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용성으로 수도를 옮겼었다.


이후 야심에 가득 찼던 모용보의 외숙 난한이 모용보를 암살하고 보위에 올랐지만 모용보의 서장자 모용성은 조카 모용기와 교신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이들은 난한의 동생인 난제와 난난 사이를 이간질하여 둘이 다툼을 벌이게 만든 뒤 그 둘을 내쫓는 공을 세운다.


그들의 계략이란 걸 몰랐던 난한이 감사의 표시로 연회를 베풀자 모용성은 그 자리에서 난한을 죽이고 보위에 오른다. 이후 그가 사망하자 모용희가 계략을 꾸며 모용성의 태자 모용정을 죽이고 보위에 오른다.

후연의 마지막 황제 모용희는 저족의 부씨 여인인 융상과 훈영에 빠져 수만 명의 백성을 동원해 궁정 화원을 조성하는 등 국력을 낭비하다 금위군 통령 풍발 등이 위시한 모용보의 아들 모용운에게 황위를 빼앗기고 처형된다.


이로써 후연은 멸망하고 모용운의 북연이 새롭게 등장한다. 위진남북조 시대 386년 모용수가 세운 후연은 4대를 거치며 21년 만에 멸망했다.



모용보는 고구려 출신 고운의 무예가 뛰어났기에 양자로 삼아 모용씨를 내려줬으나, 모용운은 즉위한 뒤 원래 성인 고를 사용했다. 풍발 형제의 전횡이 우려스러워 이반과 도인 등의 시위를 항상 곁에 두었다.


북연의 정시 3년(409) 10월, 이반과 도인이 고운을 배반하고 그를 죽인다. 이에 풍발이 사태를 수습하며 보위에 오르지만, 그전에 고운의 측근들과 밀모했을 공산이 크다.


북연의 태평 22년(430), 풍발이 죽기 직전 동생 풍홍이 보위를 빼앗고 조카 1백여 명을 모두 살해한다. 이외의 종친들을 마구잡이로 살육하자 풍씨 종친들이 대거 위진남북조 시대 강국인 북위로 귀순했다. 북위로선 북연 공격의 적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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