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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7

10만 대군으로 진격한 동위 고환 - 5차 회전 옥벽지전 [83화] 옥벽지전(玉璧之戰)은 망산지전 이후 3년이 지난 546년. 동위 무정 4년(546), 서위 문제(원보거) 대통 12년(546)에 일어난다. 서위와 동위의 5차 회전으로 마지막 회전이기도 하다. 2월, 양주에서 우문중화가 토욕혼과 반란을 일으키지만 금세 제압된다. 이때 영천의 동위 후경이 형주로 진격하나 서위 조정은 이 역시 막아낸다. 10월, 동위와 서위의 마지막 회전이 벌어진다. 고환은 친히 10만 대군으로 분하 하류의 서위 요충지인 옥벽(지금의 산서 직현의 서쪽)을 겹겹이 포위한다. 서위의 장수 위효관에겐 고작 수천의 병사밖에 없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가장 처절했던 공성전) 고환은 서위의 분수 하류에 있는 주요 거점을 없애고자 밤낮으로 포위 공격을 시작했다. 한편으로 성의 남쪽에 토산을 쌓고, 다시.. 2020. 6. 25.
우문태(문제) 고환(효정제) 3차 하교지전 [81화] 서위 우문태는 사원대첩 후, 사기가 올라서 적극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여, 일거에 하동의 포판과 낙양의 금용성을 확보했다. 기세를 몰아 우문귀가 영천까지 공격하여 의주, 양주, 예주, 광주, 형주 일대를 서위 영토로 만든다. (당시 동위는 효정제, 서위는 문제 시기) 동위 효정제 원상 원년(538), 동위 고환의 장수 후경이 낙양 금용성을 탈취한 뒤 약탈을 감행한다. (3차 회전 하교지전, 이 글을 주로 참고) 후경은 낙양 내외의 많은 민가와 관청을 불살랐다. 서위의 문제 원보거와 승상 우문태는 원래 낙양을 점령한 후 선제의 능원에 제사 지내고자 하였는데, 후경이 금용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우문태가 친히 대군을 이끌고 가서 지원했다. 전군이 곡성(谷城, 하남 신안현 동쪽)에 이르렀을 때, 고환의 동위 선봉.. 2020. 6. 6.
고환(동위) vs 우문태(서위) 2차 회전 사원지전 [80화] 위진남북조 시대 천평 4년(537), 동위 서위간에 사원지전이 폭발한다. (2차 회전 이 글을 주로 참고해 작성) 8월, 우문태는 이필, 독고신, 양어, 조귀, 우근, 약간혜, 이봉, 유량, 왕덕, 후막진숭, 이원과 달해무등 12명의 장수를 이끌고 동위로 진격한다. 병력이 동관에 이르렀을 때, 우문태는 병사들 앞에서 맹세하며 말한다. "이번 출병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폭란한 자를 주살하기 위한 것이다. 모두 여러 병사에게 달려 있다. 무기와 전마를 잘 정돈하여, 혈전에 대비하라. 재물을 탐하거나 적을 경시하거나, 흉포하게 행동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명령을 따르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명령을 어기는 자는 죽일 것이다!" 바로 우근을 동정선봉으로 삼아, 그날로 반두(盤豆, 지금의 허남성 양평의 서북).. 2020. 6. 5.
동위 서위로 분열된 북위: 1차 회전 포판진 [79화] 영희 3년(534) 7월, 북위 효무제가 10만 병사로 위진남북조 시대 남조 양나라를 치겠다며 병사를 일으켰지만, 이는 북쪽의 고환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고환은 22만 병사를 다섯 갈래로 나눠 효무제의 친정을 돕겠다고 했으나 이는 효무제와 대적하겠다는 의미였다. 효무제가 친히 10만의 군사로 진양의 고환 공격을 개시한다. 이전에 효무제는 관서의 군벌인 우문태를 상서좌복야에 임명하며 공주를 보내 처로 삼게 했다. 믿을 만한 보험을 하나 둔 것이다. 그러나 효무제나 주변 대신들은 소인배에 불과했다. 곡사춘이 급히 내려오느라 피로한 고환의 군사를 기습하려 했으나 황문시랑 양관이 이를 막았다. "곡사춘이 도하 한 후 기습에 성공해 고환을 토벌할지라도 이는 또 하나의 고환을 만드는 것입니다."우매한 효무제가 이.. 2020. 5. 18.
북위 고환. 6진 장병을 얻고 태원왕 이주영 세력 제압 [78화] (75화는 74화 상세 설명에 해당합니다)유연 남침과 6진의 난북위 효명제 정광 4년(523), 유연이 남침한다. 회황의 군민들은 양식이 없어 굶게 되자 도리어 위나라 관료들을 죽이며 반란을 일으킨다. 위진남북조 시대, 북위 조정도 어쩔 수 없이 공격을 감행한 유연과 함께 이들을 제압해 버린다. 그리곤 포로가 된 20만의 군민을 하북으로 이주시켰지만 두락주, 선우수례, 갈영 등이 반란을 일으키며 하북 일대는 아수라장이 돼버린다. 기후가 좋지 않은 척박한 땅에 천대와 멸시를 받던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포로의 신분으로 이주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유연도 내분으로 일족 일부가 북위로 망명한 상황이었기에 저런 일이 가능했었습니다) 이들을 제압한 것이 이주영이고 제압한 공로로 위대장(친위도독)에 임명되었.. 2020. 5. 17.
발해 사람 고환(북위 효무제 옹립)의 이주씨 일망타진 [77화] 북위 절민제 즉위석 달 후, 건명 2년(531), 이주씨 일족은 광릉왕 원공을 새로 옹립하니 그가 위진남북조 시대 절민제이다.이주천광은 관우, 이주조는 병주와 분주, 이주중원은 서주와 연주를 점거했고 이주세륭은 조정을 장악했다. 이전에 이주영에게 칭제를 권했던 고환은 이미 수만 명의 지휘권을 얻은 상황이었으며, 위진남북조 시대 발해군의 고건 형제, 봉씨 일가, 범양 노씨 일가, 조군 이씨 일가들의 사병과 연계를 성사시켜 이주씨 타도의 총수로 추대된다. 중흥 2년(532) 초, 고환은 효장제 살해를 이유로 군사를 일으켜 효무제를 옹립하고, 광하에서 이주씨 군사를 대파한다. 고환은 전마 2천 필에 병사 3만에 지나지 않았으나 휘하 고오조가 분전해 업성의 이주씨 20만 대군을 대파했고, 4월엔 곡사춘이 하교를.. 2020.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