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악 죽음위진남북조 시대, 장안에서 두 군대가 합세하자 심전자는 헛소문을 퍼뜨린다. 왕진악이 남방 병사를 몰살하고 장안에서 모반을 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병사들이 서로를 의심했고, 왕진악은 심전자의 요청으로 부홍지의 대영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부홍지는 없고 심전자가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곧이어 심씨 일족인 심경인이 왕진악의 목을 베고, 왕진악의 형제와 사촌 등 7명을 더 죽였다. "유태위의 명을 받아 모반을 주도한 왕진악을 주살했다!" 부홍지는 심전자가 졸지에 자신의 영채 안에서 왕진악을 죽이자 매우 놀라 유의진에게 알렸다. 막료장 왕수 등은 심전자 일행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장안성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아무 까닭 없이 대장을 죽인 죄로 그의 목을 베었다. 부홍지가 지양에서 혁련괴의 ..
후연, 후진 북방 상황후연이 창건될 당시 하동에선 모용홍이 서연을 세웠으나 16국에는 포함되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미약했다. 고작 2년 동안 보위가 7번이나 바뀌면서 최종적으론 모용외의 동생인 모용운의 손자 모용영이 황제가 되었다. 처음엔 후연의 번국을 자청했지만 386년 장자에서 황제를 선포했다. 중흥 8년(393), 남북조시대 영웅 모용수의 공격에 장자가 함락되며 모용영은 목이 베였다. 모용수의 뒤를 이은 모용보는 모용덕(전연의 황제 모용황의 막내아들이자 후연 모용수의 동생)에게 기, 연, 청, 서, 형, 예주 6개의 군사를 총괄케 했다. 당시 북위는 이제 막 건국된 신생 국가였지만 훗날 도무제로 추존되는 탁발규의 대군은 기세가 등등했다. 북중국의 최강자인 후연을 공격해 황제 모용보를 압박했고, 이내..
위진남북조를 가로지르는 비수대전 승리 이후, 동진은 이 기회를 틈타 양양, 익주, 양주 등지를 수복한다. 하지만, 중원 수복 의지는 약해 회수와 관중 일대의 요충지는 얼마 안 가 다시 잃는다. 전진 멸망의 원인은 비수대전 패배이다. 국력이 크게 손상된 것은 아님에도 부견의 무리한 융화 정책이 불러온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강제적으로 살던 곳을 떠나 중원의 낯선 곳으로 이주한 이민족들의 고충을 부견은 이해했을까?황실과 가까운 저족들은 국가의 중심부가 아닌 변방으로 나간 것에 만족했을까? 부견은 꿈만 좇았지 현실적인 감각이 매우 떨어지던 인물로 보인다. "왕맹 같은 시어머니"가 곁에 없는 "뜬구름 잡기 대마왕 부견"의 패망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큰일을 치룬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 효무제 사마요는..
중국 황제 동진 사마덕종 소개, 유유 장군의 꼭두각시였던 인물 중국황제 중 한 명인 동진 안제 사마덕종은 382년 출생하여 419년 1월 28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습니다. 자는 안덕安德이며, 동진 14대 황제로 397년에서 419년까지 제위에 있었습니다. 사마덕종은 효무제孝武帝 사마요司马曜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진귀녀陈归女(후에 위덕황태후为德皇太后로 봉해짐)이며, 387년 9월 16일 태자로 책봉됩니다. 397년 11월 6일 효무제가 사망하자 보위에 올랐고, 왕희지王羲之의 손녀 왕신수王神爱를 황후로 책봉합니다. 사마덕종이 보위에 올랐을 무렵, 동진 황제의 권위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변방의 장수들은 사실상 자립하여 조정의 명을 듣지 않았고, 중앙 권력도 조정 대신들의 손에 넘어가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