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위12 우문선비 북주 건국 과정 - 우문태를 배신한 주나라 우문호 [100화] 위진남북조 시대 말기, 제나라(북제) 멸망 이후 풍소련은 이후에 고위가 모반을 일으키다 발각되어 주살되니 우문달에게 하사됐으며 양견이 북주의 보위를 찬탈하자 우문달의 정비인 이씨의 오빠 이순에게 하사됐다가 이순의 모친에 의해 자진한다. 주나라 (북주) 위진남북조 시대 북방 통일을 이룬 북주의 무제 우문옹의 뒤를 이은 건 아들 선제 우문윤이다. 선제에겐 북주와 북제의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그러나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선제는 황제가 되자마자 주색에 빠지고 공신들을 제거하며 국력을 소진했다. 재위한 이듬해인 579년, 7살에 불과한 태자 우문천(우문연衍에서 우문천闡으로 개명)에게 보위를 물려주니 그가 정제이다. 선제는 스스로 천원 황제를 칭하며 전횡을 일삼.. 2021. 4. 19. 선비족 우문태의 주나라(북주) | 동위(북제) 정복 94화 고환의 동위는 선비족과 한족 간의 갈등이 컸다. 선비족 고관들이 한족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고환의 총애를 받던 고오조는 휘하의 선비족 장병들 속에 한인들이 섞여 있으면 고환에게 요청해 이들을 다른 부대로 이전시키는 등 당시 선비족 대장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일화를 몇 가지 남겼다. 한번은 황하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물에 빠져 죽자, "한 푼의 가치도 없는 한인들은 죽게 놓아두어라!" 라는 말을 했다. 고환도 이를 타개하려 시도는 했지만, 동위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이는 해결되지 않았다. "한인은 너희 노복이다. 남자는 너희를 위해 경작하고, 여자는 너희를 위해 옷을 만든다. 곡식과 비단을 세금으로 내 너희를 따뜻하게 먹이고 있다. 왜 그들을 업신여기는 것인가?" "선비족은 너희가 고용한 용병이다... 2020. 12. 31. 북량 멸망 - 형주 파촉을 얻어낸 서위 우문태 [92화] 위진남북조 중기 - 양원제 승성 2년(553) 10월, 왕승변은 건강, 진패선은 경구에 주둔케 했다. 승성 3년(554) 4월, 서위의 사자를 북제의 사자보다 홀대했다는 이유로 우문태가 11월에 출병을 명한다. 우근, 우문호, 양충 등이 한수를 넘어 강릉에서 4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황화에 이르렀다. 왕승변을 대도독으로 삼고 진패선에겐 양주로 군영을 옮기게 했다. 소역은 밤에 봉황각에 올라가 천문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객성(혜성처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별)이 형초의 영역으로 들어왔으니 우리가 필히 패하겠구나!" 강을 건너는 서위 군을 왕포, 호승우, 주매신, 사답인 등이 영격했지만 모두 패했다. 목책을 두고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 양나라 장수 호승우가 유시에 맞아 전사한다. 서위군은 여세를 몰아 목책.. 2020. 10. 13. 양나라 소역 황제가 되다 - 위진남북조 시대 강릉으로 천도 [91화] 후경으로 인해 양나라 많은 지역이 동위와 서위에 편입되었고 각지의 군웅들은 할거하여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았기에 황제가 된 소역(양원제)이 다스릴 수 있는 지역은 많지 않았다. 이보다 앞선 7달 전, 파촉의 친동생 무릉왕 소기가 스스로 칭제하여 세자 소원조를 황태자에 봉했고, 같은 해 8월엔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내려왔다. 태자 소원조는 처음에 후경에 소역이 패했다 거짓말을 해 아버지와 동으로 왔고, 서위가 철기 1만으로 병사가 거의 없는 성도를 포위하자 이번엔 강릉 일대를 함락시키자 제안한다. 그러나 병사들은 고향인 촉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말뿐인 포상만을 들어온 데다 군량마저도 떨어져 전투 능력을 거의 상실했다. 이에 소역에게 강화를 요청했으나 소역은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양원제 승성 2년(553).. 2020. 10. 1. 550년 양나라 소역, 진패선 등장 - 후경 패퇴 [89화] 태청 3년(549) 8월, 양나라 서강독 진패선이 후경에게 투항하려던 광주자사 원경중을 습격해 살해하고 정곡후 소발을 광주자사로 삼는다. 상동왕 소역의 세자 소방이 조카인 하동왕 소예에게 기습을 받아 살해당하자 왕승변과 포천에게 명해 소예를 공격한다. 신주자사 포천은 하동왕 소예에게 승리를 거듭하며 장사에서 그를 포위하자, 소예의 동생 악양왕 소절이 소역의 근거지인 강릉을 공격한다. 이에 양나라 소역은 왕승변의 계책을 받아들여 소절의 근거지인 양양을 공격하니 소절은 왕비와 세자를 서위에 인질로 보내며 구원을 청한다. 우문태는 양충에게 명해 형주 일대 15주의 군사를 총지휘하는 한편, 경릉을 지키며 소절을 위협하던 유중례와 대치하도록 명한다. 소릉왕 소륜은 소역이 조카인 소예, 소절이 서로 다투고 서위까지.. 2020. 8. 12. 후경, 양나라, 왕사정 물리친 동위 고징 - 위진남북조 85화 양무제 태청 원년(547) 9월, 양무제는 조카 정양후 소연명에게 15만의 대병을 주어 동위 토벌을 명한다. 소연명은 계책도 없고 황족임을 내세운 교만한 소인배였다. 처음 제장들의 반대에도 팽성을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했고, 원군으로 합류한 동위 모용소종의 기습이 벌어지자 작은 손해를 입곤 겁에 질려 서둘러 철군한다. 당시 모용소종은 양나라 곽봉의 진영을 급습했으나 실패했었다. 소연명은 예하 장수들이 잘 막아냈음에도 이것에 겁을 먹고 철군을 결정했었다. 이에 노련한 모용소종이 거짓으로 먼저 철군한다. 양나라 군대의 군율이 엄격하고 방비도 철저해 쉽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내가 먼저 짐짓 퇴각하는 모습을 보여 적들이 쳐들어오도록 유인할 것이다. 너희는 기회를 보아 그들의 배후를 격살하라!".. 2020. 7. 3.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