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무제는 조세를 포탈하는 관료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 시기 유송은 재정이 악화되어 갔다. 또한 문벌귀족은 노력하지 않아도 고관에 오르나 한문, 서민들은 출세길이 막혀 서진 말기처럼 현학이나 풍류를 추구하는 행태가 악화하었다. 따라서 관료들의 업무는 항상 지체되었고 국가 운영은 말단 관리들이 담당하게 되어 유송은 내부가 흔들리게 된다. 국가의 내부 문제를 악화시킨 효무제 유준은 35세의 나이에 병사하고 태자 유자업이 465년 정월에 뒤를 이으니 그가 전폐제이다. 그 유명한 유.자.업. 유송 전폐제 유자업은 어려서부터 조급하고 포악했는데, 하루는 어머니 왕태후가 병이 위독해지자 아들인 황제가 보고 싶다며 불러오게 했다. 그러자 유자업은 이렇게 말했다. "병자의 방에는 귀신이 많은데 어찌 갈 수 있는가!..
북위 vs 송나라원가 27년(450), 양양, 수양, 팽성 등에 황자들을 부임시키며 북벌의 의지를 굳건히 세워 두었었던 문제가 왕현모를 필두로 두 번째 북벌을 시도한다. 이때, 유송 문제는 여러 문인 귀족들과 회의 중이었는데 글자도 못 읽고, 책에는 손도 댄 적이 없던 골수 무인 심경지가 문제에게 직언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예컨대 집을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밭일은 머슴에게 맡기고,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시키는 법. 폐하는 지금 적국을 치려고 하면서 백면서생들과 일을 의논하고 있으니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유송 문제는 웃으며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북위 태무제 탁발도의 대대적인 송나라 공격과 시기가 겹쳐 북벌군은 되려 수세에 몰린다. 공격에 나선 병사가 수비를 맡은 것이다. ..
동진 유유의 북벌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남연. 남연 황제 모용초는 관문을 지키고 후방을 교란해 보급을 끊자는 의견보단, 대현관으로 들어오게 한 후 정병을 보내 싸우도록 명하는 패착을 저지른다. 유유의 예상과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저들 선비족은 탐람한 까닭에 멀리 내다보는 계략이 없다." 남조 유유가 남연의 수도 인근 대현관에 다다를 때까지 남연의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영웅 유유모용초는 단휘와 하뢰로에게 5만 보병으로 임구성을 지키게 하고 곧, 자신도 병사 4만을 이끌고 임구로 간다. 유유는 병거 4천 대로 장벽을 만들어 남연의 기병을 무력화시키고 3천의 병사가 지키는 임구성을 급습해 함락시킨다. 동진의 단휘는 추격전을 펼쳐 남연의 장수 10여 명을 벤다. 다음 날에도 광고의 외성..
처음, 동진 무너뜨리고 황제가 된 환현(환온의 막내 아들, 환초 황제)은 제위에 올랐다. 그리고 황제 환현은 변범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옛날 양부는 언제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도록 말렸었어. 이제 심복인 양부를 잃었고, 색원도 잃었다고. 그러니 무모하게 이런 당돌한 일을 함에 있어 하늘의 뜻을 헤아릴 필요가 있겠는가?" 아마도 남조에서 환현을 따르는 무리에서도 환현의 동진 황위 찬위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범상치 않은 ㅠㅠ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애초 그는 환현이 환온의 아들이기에 높은 직책에 오르는 것엔 찬성했지만 마침내 황제의 자리까지 빼앗자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환현도 그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이제 갓 황제가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