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으로 진출한 강남 사족, 호족들과 육손 손자 육기 육운 [11화] 한편으론, 변방으로 취급받던 강남 사족들의 중원 진출도 빈번했다. 중원은 중국의 중심이고 아직 발전이 더뎠던 강남의 사족들은 낙양과 장안을 중심으로 한 관중 사대부들의 무시를 받기 일쑤였다. 당시 『중원으로 이주』한 강남 사족을 대표하는 이가 육손의 손자이며 육항의 아들이었던 육기, 육운 형제였다. 오나라가 멸망하자 사공 장화는 명망이 높던 저도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이륙(육기, 육운)은 용이 강한江漢에서 뛰어오른 것 같고, 언선(고영)은 봉이 조양朝陽에서 우는 것 같았소." 그럼에도 중원 명문가들은 강남 사족들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육기가 처음 낙양에 갔을 때 장화에게 자신이 앞으로 인사하러 가야 할 곳을 물었는데 유보가 그..
가황후를 축출한 승자 사마륜, 태자 사마휼의 억울한 죽음 [6화] 원강 9년(299), 가황후는 미남자로 유명했단 반악에게 태자의 필체를 흉내 내 모반의 글을 쓰도록 한다. "폐하는 응당 스스로 명을 끊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태자인 내가 대신할 수밖에 없다. 생모인 사숙비와 함께 날짜 안에 동시에 행하기로 약조했으니 의심하며 머뭇거리지 마라." 다음 날 아침, 가남풍 황제가 병이 났다는 이유로 태자에게 입조를 명했다. 가황후는 시비 진무를 시켜 술 3되와 대추가 가득한 쟁반을 들고 가 태자에게 마시게 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던 사마휼은 공복에 술을 마셨다가 실수할까 두렵다며 사양했다. 가황후는 당연히 질책한다. "너는 어찌 이처럼 불효한가? 부모가 술을 내려도 마시지 않으니 술에 무엇이라도 들..
사마의 막내 아들 사마륜과 가밀 사마휼의 대결, 강통의 사융론 궁중 암투로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강통은 사융론을 올리며 5호(흉노, 선비, 저족, 갈족, 강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괴이한 기풍으로 극도로 탐욕스럽기 그지없고, 흉포하고 사나운 데다 인정도 없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힘이 약하면 우리를 두려워하며 복종하나 강하면 곧바로 침략하며 반기를 듭니다... ... 지금 화하의 사서士庶가 저들을 업신여기자 그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있습니다. 반드시 틈을 보아 흉포한 성정을 드러낼 터이니 지금 저들이 피폐하고 우리의 무력이 성한 때를 이용해 저들을 원래 살던 곳으로 쫓아내느니만 못합니다." 사마의가 살아있었더라면 강통의 사융론을 받아들였을까? (특이하게 동진 16국 시대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훗날..
위진남북조 4화. 팔왕의난 1차전, 사마량 사마위 폐출과 승자 가남풍 사마량은 태보 위관과 친했는데 사마위의 호전적인 성격을 꺼려 병권을 빼앗은 뒤 봉지로 돌아가도록 조치했다. 팔왕의난을 불러온 작은 사건이었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사마위는 크게 분노했고 공손굉, 기성, 이조를 황후 가남풍에게 보내 사마량과 위관의 모반을 고한다. 이전에 가남풍은 위관이 사마염 앞에서 사마충이 보위를 잇기 어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기에 앙심을 품고 곧 남편에게 조서를 만들게 한다. 위관은 예전에 연회 자리에서 술에 취한 것을 기회로 하여 무제의 옥좌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아뢰었다. "신은 아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공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오?" 위관은 하려던 말을 그만두기 세 차례에 이르렀다.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