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진남북조 시대] 사마예를 받아들인 강남 호족들, 그 이유는? 서진은 팔왕의난을 기점으로 국운이 서서히 몰락합니다. 그리고 사마씨 왕들 사이에 의심이 만연하게 퍼지죠. 팔왕의난 최종 승자는 동해왕 사마월이지만, 그도 결국 자신이 끌어들인 이민족의 손에 제거됩니다. 그 유명한 영가의난 당시에 말이죠. 강남으로 이주한 사마예는 황위 계승권에서도 멀고, 그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영향력』이 없던 그를 주시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동해왕 사마월이 사마예를 의심해 끊임없이 속박하고 낭야 일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감시했습니다. 그렇게 험난한 시기를 넘어 기어코 강남으로 이주하여 동진 건국자 동진 원제로 추앙받습니다. (결국 강남의 주인이 된 것은 낭야왕이 아닌, 낭야 왕씨 일..
사마륜의 짧은 집권기, 제왕 경, 성도왕 영, 하간왕 옹의 분열 [7화] 당시 황궁의 진혜제에게 진준이란 자가 고했다. "응당 사람을 시켜 백호번(싸움을 독려한다는 뜻)을 들고 밖으로 나가 싸움을 말려야 합니다." 상국부에 있던 태자좌솔 진휘의 형인 진준은 동생처럼 회남왕 사마윤을 지지하던 자였다. 당시엔 싸움을 말리는 추우번을 들고 가라 말했어야 했는데 우매한 진혜제는 이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준은 일부러 거꾸로 말을 해 상국부를 포위한 사마윤의 군대에 힘을 보태려는 심산이었다. 사마도호 복윤은 곧 백호번을 들고 상국부로 향했다. 이때 사마륜의 아들 여음왕 사마건이 복윤에게 애원했다. "장차 부귀를 그대와 함께하겠소!" 복윤은 이 말을 믿고 사마윤에게 찾아가 황제의 조서를 받으라 명했다. 사..
위진남북조 4화. 팔왕의난 1차전, 사마량 사마위 폐출과 승자 가남풍 사마량은 태보 위관과 친했는데 사마위의 호전적인 성격을 꺼려 병권을 빼앗은 뒤 봉지로 돌아가도록 조치했다. 팔왕의난을 불러온 작은 사건이었다.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사마위는 크게 분노했고 공손굉, 기성, 이조를 황후 가남풍에게 보내 사마량과 위관의 모반을 고한다. 이전에 가남풍은 위관이 사마염 앞에서 사마충이 보위를 잇기 어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기에 앙심을 품고 곧 남편에게 조서를 만들게 한다. 위관은 예전에 연회 자리에서 술에 취한 것을 기회로 하여 무제의 옥좌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아뢰었다. "신은 아뢰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공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오?" 위관은 하려던 말을 그만두기 세 차례에 이르렀다. 그리고 ..
위진남북조03. 가남풍의 정권 장악, 제거된 양준 일파, 석륵의 봉기 준비 초왕 사마위(진무제 사마염의 5남)가 입경한 지 얼마 안 된 「진혜제 원강 원년(291) 4월」, 서진 황제 진혜제 사마충은 이조와 맹관이 내민 조서에 서명했다. 백치 황제 사마충은 그 내용도 잘 모른 체 서명을 닦달하는 신하의 청에 못 이겨 일단 서명부터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양준을 위시한 양씨 일가가 모반을 획책했으니 이를 제압(도륙해라)하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양준이 모반을 꾀했다면 양황후를 먼저 찾았거나 양씨 일가의 누구라도 불러들여 자초지종을 들으려 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남풍의 정치적 술수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곧, 조서의 내용대로 서진 초왕 사마위는 사마문에 군사를 배치하고 동안공 사마요는 금군을 이끌고 ..
위진남북조02. 팔왕의난을 유발한 서진 황제 사마충 [사마유 억울함] 귀가 얇았던 진무제 사마염의 실수는 크게 아래와 같다. 이 실수로 위진남북조 시대(팔왕의난)가 시작되었다. 1. 사마염은, 부부의 금실이 좋아 양황후의 말만 듣고 사마충을 후계자로 선택했으며, 가남풍을 내치지 않았다.2. 사마염은, 귀가 얇아 가남풍을 맞아들이고 사마충의 어리석은 행동들을 애써 무시했다.3. 사마염은, 사마휼에게 큰 기대를 했는데, 그 이유로 가남풍이 사마휼을 타락하게 만든 뒤 죽였다.4. 사마염은, 훗날의 정쟁을 예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마충이 황제가 되면 사마염 생전처럼 가씨와 양씨는 손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또 한가지 추가하자면 동생 사마유를 억울하게 죽게 만든 일이다. 총명하며 가뭄이 들면 스스로 반찬..
위진남북조00. 팔왕의난에서 수나라 통일까지 위진남북조시대를 위한 변명 中, 5호 16국이라고 불리는 시대는 팔왕의난 초기, 5부部 흉노의 맹주 유연이 한왕漢이라고 칭한 서진 건무 원년(304)부터 439년 북위의 세조 태무제의 화북 통일까지 135~136년 동안을 말한다. (수나라 통일 이전) 당나라의 역사가 이연수는 남사와 북사를 저술하면서 남사는 송 영초 원년에서 진陳의 정명 2년(589)까지 송, 제, 양, 진 4개 왕조의 170년, 북사는 북위 등국 원년(386)에서 수의 의령 2년까지 북위, 서위, 북주, 동위, 북제의 244년 동안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 연유해서 이 시대를 위진남북조시대라고 부른다. 팔왕의난, 5호 16국, 남북조, 이 명칭에 대해선 여지가 없습니다. 진 -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