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27 서진 말기 화북 농경 지대, 위진남북조 시대 강남 호족 [10화] 서진 말기 화북 농경 지대, 위진남북조 시대 강남 호족 [10화] 발췌 : 중국의 역사 - 위진남북조 - 가와카쓰 요시오, 혜안출판사 중국 본토는 대게 회수淮水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북과 이남으로 크게 나뉜다. 회수 이북은 개활지라 명명되며 건조도가 높아 삼림이 충분히 생육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삼림이 자란다 하더라도 일단 한 번 채벌되면 재생되기 어렵다. 따라서, 회수 이북에는 삼림지대가 형성되기 힘들었고, 이에 『울창한 삼림』에 방해를 받지 않은 화북의 대평원은 전망이 좋고, 공간이 열려 있어 집단의 이동이 쉬웠다. 또한 치수가 어렵기로 유명한 황하의 물을 거의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여서, 소규모 관개와 자연의 천수를 주로 이용하는 소위 소관개 천수 농경 지대였다. 뜻밖에 농사에 가혹한 환경에 처한 .. 2019. 3. 29. 정기예금 적금 이자 계산 및 세후이자 알아보기 이자소득세는 모든 금융 상품 이자 소득에 붙는 세금입니다. 주민세 1.4% + 이자소득세 14.0% = 15.4% 은행 예금 적금 등 비과세 아닌 상품은 적립 만기 시 받는 이자에 대한 세금을 뗍니다. 금리라는 건 세전 이자를 말하며 세후이자는 금리로 발생한 이자에서 이자소득세를 뗀 금액입니다. (통장에 들어오는 이자 소득 금액) 적금 이자 4%를 예로 들었을 때, 이율은 1년 기준으로 6개월 만기라면 4% 절반 2%를 이자 소득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이자 계산할 땐, 1년이 아니라 하루 이자를 계산하는 게 정확합니다. ■ 예금 이자 1일 계산 예)1년 만기 600만원 (월 50만원)금리(이율) 4.0%600만원 * 0.040 / 365 = 세전 하루 이자 네이버, 다음 포털사이트 예금 적금 이자 계산기.. 2019. 3. 28. 벽제관 전투 및 겁쟁이 선조실록 기록 (1593년 2월 5일) 벽제관 전투 및 겁쟁이 선조실록 기록 (1593년 2월 5일)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선조실록 1593년 2월 5일 (벽제관전투 22일 전) 선조실록 - 접대도감 보고 “남방 군사의 천호千戶 오유산이 징발로 말하기를 '지난달 27일에 관군(이여송의 명나라 군대)이 귀국 초병哨兵의 허튼 보고에 속아 왜적은 이미 물러가고 경기 지방은 텅 비었으려니 생각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앞으로 나아갔었다. 그런데 왜적이 미리 매복하고 있었으므로 길이 끊기고 포위당하여 습격을 받았다. (벽제관전투 패배도 사실 정보력의 패배임) 그리하여 왜적을 참수하기는 겨우 1백 20여 명 했는데, 대국 군사의 사상자는 1천 5백여 명이나 되었다. 제독 이여송은 지금 임진강 가에 머물고 있는데 눈이 저렇게 내리니 반드시 개성으로 후퇴하.. 2019. 3. 27. 컴공 휴학 중 전공 공부? 수학 자료구조 교양서 추천 여러 사정으로 휴학 중인 컴공 대학생들 많아요. 저는 1학년 마치고 군대 가기 전에 휴학했었죠. 군대만 아니었어도 3년 빨리 사회에 나왔을 텐데, 군대가 남자들 발목을 잡네요. 그래서 군가산점 부활을 원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ㅎㅎ 이 포스트에는 대학교 1학년/2학년 마치고 휴학한 대학생들을 위한 글이 담겼습니다. 컴공 2학년 마치고 휴학해서 1학년 때 뭘 배웠나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게 없어요.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배운지 얼마 안 되어 기억이 잘 안 나는 겁니다. 처음부터 배우는 것배웠던 걸 기억해내는 것 컴공 휴학 중이면 배웠던 걸 기억해내어 + 논리적 능력 키우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 전공 공부하면 됩니다. ◆ C언어는 잘 생각난다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어쨌든 전공 중 C언어는 기억난다.. 2019. 3. 26. 비극적인 황제 사마충 사마치, 서진 멸망과 영가의 난 [9화] 비극적인 황제 사마충 사마치, 서진 멸망과 영가의 난 [9화] 잔혹했던 왕준은 업성을 대대적으로 약탈했으며 선비족 사병들이 약탈한 부녀가 행군에 걸림돌이 되자 역수에 밀어 넣어 모두 죽였다. 이때 죽은 자만 8천여 명에 달한다고 했으니 이때부터 북방 유목민의 기병에 대한 공포가 천하에 퍼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낙양을 점거했던 장방 또한 매우 교만했다. 낙양 일대를 약탈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후궁과 궁녀들을 겁탈하거나 황실의 귀중품을 훔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진혜제를 압박해 사마영의 황태제 신분을 폐하고 예장왕 사마치를 황태제로 세우는 조서를 내리게 했으며 함부로 장안 천도를 거행했다. 진혜제의 형제는 25명이었으나 이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사마영과 사마치, 오왕 사마안 밖에 .. 2019. 3. 25. 위진남북조 시대 초기, 강남 호족이 사마예를 받아들인 이유 [위진남북조 시대] 사마예를 받아들인 강남 호족들, 그 이유는? 서진은 팔왕의난을 기점으로 국운이 서서히 몰락합니다. 그리고 사마씨 왕들 사이에 의심이 만연하게 퍼지죠. 팔왕의난 최종 승자는 동해왕 사마월이지만, 그도 결국 자신이 끌어들인 이민족의 손에 제거됩니다. 그 유명한 영가의난 당시에 말이죠. 강남으로 이주한 사마예는 황위 계승권에서도 멀고, 그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영향력』이 없던 그를 주시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동해왕 사마월이 사마예를 의심해 끊임없이 속박하고 낭야 일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감시했습니다. 그렇게 험난한 시기를 넘어 기어코 강남으로 이주하여 동진 건국자 동진 원제로 추앙받습니다. (결국 강남의 주인이 된 것은 낭야왕이 아닌, 낭야 왕씨 일.. 2019. 3. 23. 이전 1 ··· 134 135 136 137 138 139 140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