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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선제 시기 下 곽광 지나친 욕심으로 멸족 당하다 한나라 선제 시기 下 곽광 지나친 욕심으로 멸족 당하다 전한 소제는 스물한 살에 이르러 병사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유하劉賀(폐위된 창읍왕昌邑王)가 즉위했는데, 방탕하여 도무지 군주의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조야 안팎으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곽광이 여러 대신의 위탁을 받고, 또한 양창 등과 연계하여 조회 때에 갑자기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상관 황후의 명의를 빌려 유하의 죄상을 열거하고는 왕으로 강등시키고 식읍 2천 호를 주어 창읍에 살게 했다. 그리고 유하의 졸개들 2백여 명을 모두 저잣거리에서 참수했다. 관련 글한나라 소제 시기 上 권세가 곽광, 황제와 상관걸 사이에서전한 박사 숙손통, 주나라 진나라를 모방해 의례 제작, 한고조 권위 상승1950년대 중국 주은래 기념 사진 [철령(톄링.. 2019. 4. 26.
갈족 석륵 조나라(후조) 건국, 남북조 시대 성군 등장 [18화] 갈족 석륵 조나라(후조) 건국, 남북조 시대 성군 등장 [18화] 이즈음, 진나라 유곤은 석륵의 모친과 조카 석호를 얻는다(저족이 하도 이곳저곳으로 분산되어 살다 보니 이 둘이 어찌어찌 그리하여 유곤의 손아귀에 붙잡힌 것으로 예측됨). 그리곤 이 둘을 송환하면서 장문의 서신을 보내 항복을 권했다. "장군은 예주와 연주를 석권한 뒤, 강회 일대를 횡행하고 한면(한수와 면수)을 위협하니 .... 유총을 배반하는 것은 화를 제거하는 것이고 진나라를 좇는 것은 복을 불러들이는 것이오." 당연히 석륵은 무시하고 갈피에서 큰 배를 건조해 장차 『건업을 도모』할 뜻을 비쳤다. 예전 조조가 그러했듯 석륵에게도 불운이 찾아온다. 회수 일대에서 석 달간 장대비가 연이어 내리면서 북방의 기후에 익숙한 병사들이 전염병에 걸렸.. 2019. 4. 25.
갈족 석륵, 위진남북조 시대에 왕미 세력을 흡수한 사건 [17화] 갈족 석륵, 위진남북조 시대에 왕미 세력을 흡수한 사건 [17화] 연주자사 구희에게 대패해 유연에게 몸을 맡겼으니 석륵이 큰 인물이라 판단한 유연은 그에게 장군의 직을 내렸고 전장터에서 공을 세우기를 10여 년, 마침내 노예 출신으로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석륵은 유연의 한나라 휘하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으나 처음부터 독립할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인망을 쌓는 데도 주력했다. 약탈은 물론이고 민간인을 함부로 죽이는 것을 절대 금했으며 기주를 함락한 뒤에는 군자영을 세워 문인들을 길러냈다. 석륵의 수하였던 장빈도 이런 군자영에 스스로 찾아간 인물이었다. 유총이 황제가 되자 석륵은 다시 정동대장군, 병주자사에 임명되었고 유총의 아들 유찬과 낙양을 칠 때, 양양으로 진격해 장강과 한수 이북의 거점을 얻어냈.. 2019. 4. 24.
니조성 장벽화 특별 전시회, 니노마루 어전 입구와 조종 오사카 여행 갔다가 당일치기로 들른 교토 니조성입니다. 니조성 청류원을 지나면 니조성 장벽화 특별 전시회장을 갈 수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니조성 건축 40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였는데 지금도 하는진 모르겠군요. 니조성 장벽화 특별 전시회에는 사진 촬영이 절대 불가한 니노마루 어전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국보급 보물로 분류되는 유물들이라 보존에 각별히 신경쓰는 것들이죠. 이런 유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곳입니다. 심지어 문짝을 뜯어 통째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걸 이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것이죠. 입구 근처에 있는 곳이라 니조성 들어가자마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로 보입니다. 니조성 입구 오른쪽에 되게 큰 휴게소가 있는데 거기 바로 옆이라 눈에도 잘 띱니다. 워낙에 공개.. 2019. 4. 24.
흉노족 한나라 전조 멸망, 갈족 석륵 및 조카 석호의 평양성 [16화] 흉노족 한나라 전조 멸망, 갈족 석륵 및 조카 석호의 평양성 [16화] 광초 2년(319) 여름, 유요는 조서를 내린다. "나의 선조는 북방에서 일어났다. 광문제(유연)가 한나라 종묘를 세워 백성의 뜻을 좇았다. 지금 의당 국호를 바꾸고 선우를 선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호를 조로 바꾼 이후 진창, 초벽, 안정, 농성 등을 함락시키고 관중의 파족, 저족, 강족, 갈족 등을 제압했으며 태학과 소학을 세워 학자들 밑에서 수업을 받도록 했고, 궁실을 너무 크게 짓는 것이 옳지 않다 여겨 중단하기도 했다. 현명하게 내실을 다지던 유요는 광초 8년(325), 드디어 석륵의 조나라와 군사적 충돌을 시작한다. 석륵이 장수 석타에게 명해 상군을 쳐 3천여 명의 포로와 소와 양 등 가축 2만여 두를 빼앗은 것이다. .. 2019. 4. 23.
청류원淸流園 교토 니조성 여름 사진 (거상 스미노쿠라 료이) 혼자 일본 여행 중 오사카에서 교토로 이동해 니조성 구경했습니다. 위치는 아래 그림처럼 북쪽에 있으며, 북쪽 중간문, 녹색정원 사이입니다. 니조성 청류원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쪽 코스 대신, 청류원 빨리 갈 수 있는 동쪽 코스 선택하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서쪽 코스를 선택해 니조성 남쪽, 서쪽을 돌아 북쪽 청류원으로 향했습니다. 밟으면 건강에 좋아진다는 돌멩이들을 지나면 교토 니조성 청류원 건물이 담벼락 건너로 보입니다. 아래 사진 오른쪽 위에 보이는 건물이 청류원입니다. 저는 2018년 7월 중순,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닌 한여름에 방문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여름에는 팥빙수를 팝니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청류원 들어가는 문. 건물 2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한쪽에선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 2019.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