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탄 오해-촉은 용 오는 범 위는 개를 얻었다? 삼국지 논쟁
제갈탄에 대한 오해, 제갈량은 용, 제갈근은 호랑이, 제갈탄은 개? 촉은 용을 얻었고 오는 범을 얻었으며 위는 개(제갈탄)를 얻었다. 위, 촉, 오 천하 삼분으로 천하가 큰 혼란에 빠진 시대에 제갈 3형제도 서로 흩어져 살았습니다. 제갈량은 유비를 따라 촉蜀으로가 승상이 되어 명성은 천하에 퍼졌고,제갈근은 손권의 오吳에서 대장군, 좌도로, 예주목이 되었고,제갈탄은 조위曹魏에서 어사중승, 상서를 맡다가 양주자사楊州 刺史가 되었고, 소무장군昭武将军까지 오릅니다. 제갈량과 제갈근은 친형제였고 제갈탄은 사촌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촉은 용을 얻었고 오는 범을 얻었으며 위는 개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고대에 개狗는 부정적이거나 혐오적인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충성을 상..
2019. 1. 29.
삼국지 인물 공손찬, 역경전투, 영웅기 후한서 찬, 삼국전戰 vs 원소 下
삼국지 인물 공손찬, 역경전투, 영웅기 후한서 찬, 삼국전戰 vs 원소 下 원소가 이후 공세를 강화하자, 공손찬군은 서산연으로부터 연일 퇴각을 거듭, 삼중의 진영을 세우고 수비를 견고히 하였다. 4년 봄, 흑산적 두령 장연이 공손속과 더불어 군세 10만을 이끌고 공손찬을 구원하러 왔다. 이들의 도착 전에, 공손찬은 편지를 은밀히 공손속에게 보내었다. "과거 주나라 멸망 시 혼란으로 나빠진 시체가 땅에 가득했다고 하는데, 내심 그런 일이 말이 되겠느냐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지 못한 적의 예봉에 눌린 상황이구나. 원소의 공격은 마치 귀신과 같고, 운제 충차는 우리 군의 누각을 공격해대고, 큰북과 뿔피리는 온 땅을 울리고 있으며, 낮 밤 가리지 않고 공격해 들어와 한 마디 말할 틈도 없다. 새가 사람을 쪼아..
2019. 1. 28.
[덕수궁 중명전] 구한말 고종, 영친왕, 이하응, 친일파 사진
[덕수궁 중명전] 구한말 고종, 영친왕, 이하응, 친일파 사진 덕수궁과 중명전Deoksugung Palace and Jungmyeongjeon Hall 덕수궁德壽宮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1907년 고종의 퇴위 후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명전重明殿의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나, 1906년경부터 중명전이라 바꿔 부르기 시작하였다. 고종황제 칙명勅命, 1903년 광무 7년(1903년) 내린 칙명서다. 덕수궁인존德壽宮印存, 1903년 덕수궁인존德壽宮印存이라 제호題號하고 두 방의 인장 낙관이 있는데, 백문白文은 전석田碩이고 주문朱文은 자강子剛이다. 누구인지 미상이다. 덕수궁인존은 고종(고종 : 재위 1863~1907)이 사용했던 인장印章의 인영印影을 수록하고 석문釋文을 기록한..
2019. 1. 27.
삼국지 인물 공손찬 고안, 제, 노북, 포구 역경 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中
삼국지 인물 공손찬 고안, 제, 노북, 포구 역경 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中 원소는 장수 최거업에게 군세 수만을 통솔케 하여 고안을 포위하게 하였으나, (혜동은 말한다. 고안은 현의 이름으로, 탁군에 속한다) 함락지 못하고 군세를 돌려 남쪽으로 귀환하였다. 공손찬은 보병과 기병 30,000을 이끌고 추격, 거마 수에서 그 군세를 대파, 적 7~8,000을 죽였다. - 후한서 공손찬전 - 두 번째 전투는 고안전투입니다. 최거업이란 장수는 위서 공손찬 전에 나와 있는데요. 원소는 최거업崔巨業으로 하여금 별과 해를 살피게 하고 재화財貨를 주며 더불어 먹고 마시며 기일을 정해 회합하여 군현郡縣을 공격해 노략질하니 이것이 어찌 대신大臣으로서 의당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이것이 원소의 여섯 번째 죄입니다. - 위..
2019. 1. 25.
삼국지 인물 공손찬, 용주, 역경루, 계교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上
삼국지 인물 공손찬, 용주, 역경루, 계교전투 삼국전戰 vs 원소 上 병력을 일으켜 원소를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기주의 여러 성이 차례로 모반하여 공손찬에 가담하였다. 원소는 공손찬을 두려워하여, 발해태수의 인장을 그곳에 머물고 있던 공손찬의 종제 공손범에게 주어 발해군에 봉임하여, 이로써 공손범과 동맹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공손범은 즉각 원소에 반기를 들고 발해의 군병을 손에 넣자마자 공손찬을 지원했다. 공손찬은 휘하 무장들을 청주, 기주, 연주의 자사로 임명하고, 태수나 현령을 이곳저곳에 배치하여, 계교전투에서 원소와의 대결전을 행했다. 공손찬은 전투에 패해 계로 퇴각하였다. - 후한서 공손찬전 - 1라운드는 계교전투입니다. 공손찬과 원소의 대표전투이기도 한데요, 위에 대 결전을 준비했다는데 그것..
2019.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