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월 진회제 민제 최후, 한나라 유총 사치향락 빠지다 [14화] "지금 호로胡虜들이 낙양 근교까지 다가왔는데 모두 지킬 뜻이 없소. 조정은 모두 그대만을 믿고 있는데 어찌 지금 군사를 이끌고 멀리 출정하겠다는 것이오? 낙양을 포기하려는 것이오?" 진회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마월은 석륵을 토벌해 조정의 권위를 다시 세우겠다며 기어코 출병한다. 누가 봐도 임지인 동해로 돌아가겠다는 뜻이며 낙양은 버리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낙양의 수비병』은 거의 없어지고 기근은 더욱 심각해졌다. 사마월이 남긴 장수들은 공경들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공주들을 능욕하기까지 한다. 진회제는 참을 수 없어 구희에게 사마월 토벌을 명하는 밀조를 내렸고 그나마 사마월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서진의 마지막 숨통은 그의 폭사와 함..
흉노족 한나라 건국, 유총에게 포위당한 서진 진혜제 [13화] 유연으로선 제후왕들의 난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거사를 일으키기 좋다는 판단을 했다. "지금 우리는 강병 10만 명이 있으니 모두 일당십의 용사들이오. 북을 울리며 진나라를 멸합시다. 잘되면 한고조의 대업을 이루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지라도 조조의 패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오." "한나라는 오랫동안 천하를 다스리면서 은덕을 베풀었소. 명분으로 말하면 나는 한실의 생질에 해당하오. 형이 패망한 상황에서 동생이 뒤를 잇는 게 정리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오." 이렇게 5호의 첫 국가 한漢나라가 건국된다. 흉노 유연은 진혜제 영흥 원년(304), 좌국성에서 한왕을 칭하며 한나라 제도를 좇아 백관의 제도를 정했다. 16국 중 첫 왕조의 건국이었다. 한나..
한나라 건국 시조 위진남북조 흉노 유연, 사마영 실수 [12화] 후한 건안 21년(216), 조조가 흉노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좌, 우, 남, 북, 중앙의 5부로 나눠 부마다 1명의 도위를 두고 중앙에선 사마를 파견해 이들을 감독했다. 1만여 부락민을 거느린 좌부는 부씨현(산서성 임분현)에 거주.6천여 부락민을 거느린 우부는 기현(산서성 기현)에 거주.6천여 부락의 중부는 대릉현(산서성 문수현)에 거주. 이로써 분수 일대는 남흉노 3만여 부락이 사살싱 점령한 셈이 되었다. 중원으로 들어온 흉노 19개 부족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도각, 강서, 노수호 부족이 있었다. 이중 도각부는 한고조 시절부터 흉노로 공주들을 시집보냈기에 귀족들이 유劉를 성으로 삼았다. 그리고 중원에서 오래 살았던 탓에 한화가 많이..
서진 말기 화북 농경 지대, 위진남북조 시대 강남 호족 [10화] 발췌 : 중국의 역사 - 위진남북조 - 가와카쓰 요시오, 혜안출판사 중국 본토는 대게 회수淮水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북과 이남으로 크게 나뉜다. 회수 이북은 개활지라 명명되며 건조도가 높아 삼림이 충분히 생육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삼림이 자란다 하더라도 일단 한 번 채벌되면 재생되기 어렵다. 따라서, 회수 이북에는 삼림지대가 형성되기 힘들었고, 이에 『울창한 삼림』에 방해를 받지 않은 화북의 대평원은 전망이 좋고, 공간이 열려 있어 집단의 이동이 쉬웠다. 또한 치수가 어렵기로 유명한 황하의 물을 거의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여서, 소규모 관개와 자연의 천수를 주로 이용하는 소위 소관개 천수 농경 지대였다. 뜻밖에 농사에 가혹한 환경에 처한 ..
[위진남북조 시대] 사마예를 받아들인 강남 호족들, 그 이유는? 서진은 팔왕의난을 기점으로 국운이 서서히 몰락합니다. 그리고 사마씨 왕들 사이에 의심이 만연하게 퍼지죠. 팔왕의난 최종 승자는 동해왕 사마월이지만, 그도 결국 자신이 끌어들인 이민족의 손에 제거됩니다. 그 유명한 영가의난 당시에 말이죠. 강남으로 이주한 사마예는 황위 계승권에서도 멀고, 그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영향력』이 없던 그를 주시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동해왕 사마월이 사마예를 의심해 끊임없이 속박하고 낭야 일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감시했습니다. 그렇게 험난한 시기를 넘어 기어코 강남으로 이주하여 동진 건국자 동진 원제로 추앙받습니다. (결국 강남의 주인이 된 것은 낭야왕이 아닌, 낭야 왕씨 일..
중국 황제 동진 사마덕종 소개, 유유 장군의 꼭두각시였던 인물 중국황제 중 한 명인 동진 안제 사마덕종은 382년 출생하여 419년 1월 28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습니다. 자는 안덕安德이며, 동진 14대 황제로 397년에서 419년까지 제위에 있었습니다. 사마덕종은 효무제孝武帝 사마요司马曜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진귀녀陈归女(후에 위덕황태후为德皇太后로 봉해짐)이며, 387년 9월 16일 태자로 책봉됩니다. 397년 11월 6일 효무제가 사망하자 보위에 올랐고, 왕희지王羲之의 손녀 왕신수王神爱를 황후로 책봉합니다. 사마덕종이 보위에 올랐을 무렵, 동진 황제의 권위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변방의 장수들은 사실상 자립하여 조정의 명을 듣지 않았고, 중앙 권력도 조정 대신들의 손에 넘어가 있었..
사마륜의 짧은 집권기, 제왕 경, 성도왕 영, 하간왕 옹의 분열 [7화] 당시 황궁의 진혜제에게 진준이란 자가 고했다. "응당 사람을 시켜 백호번(싸움을 독려한다는 뜻)을 들고 밖으로 나가 싸움을 말려야 합니다." 상국부에 있던 태자좌솔 진휘의 형인 진준은 동생처럼 회남왕 사마윤을 지지하던 자였다. 당시엔 싸움을 말리는 추우번을 들고 가라 말했어야 했는데 우매한 진혜제는 이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준은 일부러 거꾸로 말을 해 상국부를 포위한 사마윤의 군대에 힘을 보태려는 심산이었다. 사마도호 복윤은 곧 백호번을 들고 상국부로 향했다. 이때 사마륜의 아들 여음왕 사마건이 복윤에게 애원했다. "장차 부귀를 그대와 함께하겠소!" 복윤은 이 말을 믿고 사마윤에게 찾아가 황제의 조서를 받으라 명했다. 사..
위나라 종회 때문에 곤란해진 죽림칠현 혜강, 소인배의 질투 종회와 혜강의 겨루기 (죽림칠현 혜강은 무시하기 일쑤, 위나라 종회는 다가서기 두려움)겨루기 1. 세설신어종회가 사본론四本論의 편찬을 처음으로 마쳤을 때 그것을 혜공에게 한번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책을 가슴에 품은 위나라 종회는 이미 마음은 정했으나 그가 난색을 보일까 두려워 감히 꺼내지 못했다. 그러고는 혜강의 집 먼발치에서 책을 던져놓고는 급히 길을 되돌아갔다. 겨루기 2. 무시무시무시 죽림칠현 혜강은 큰 나무 아래서 한창 쇠를 단련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 향자기(향수向秀, 자는 자기子期)가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혜강은 끊임없이 망치를 내리치며 마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 종회가 자리를 뜨려 하자 혜강이 ..
위진남북조02. 팔왕의난을 유발한 서진 황제 사마충 [사마유 억울함] 귀가 얇았던 진무제 사마염의 실수는 크게 아래와 같다. 이 실수로 위진남북조 시대(팔왕의난)가 시작되었다. 1. 사마염은, 부부의 금실이 좋아 양황후의 말만 듣고 사마충을 후계자로 선택했으며, 가남풍을 내치지 않았다.2. 사마염은, 귀가 얇아 가남풍을 맞아들이고 사마충의 어리석은 행동들을 애써 무시했다.3. 사마염은, 사마휼에게 큰 기대를 했는데, 그 이유로 가남풍이 사마휼을 타락하게 만든 뒤 죽였다.4. 사마염은, 훗날의 정쟁을 예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마충이 황제가 되면 사마염 생전처럼 가씨와 양씨는 손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또 한가지 추가하자면 동생 사마유를 억울하게 죽게 만든 일이다. 총명하며 가뭄이 들면 스스로 반찬..
위진남북조01. 진무제 사마염 사치향락, 백치 사마충 (서진 쇠퇴) 중국의 역대 통일 왕조 중 최악으로 평가받는 위진남북조 진나라晉의 창업자 진무제 사마염은 자신의 나라를 망치는 데 일조한다. 천하 통일 이후에 권문세가의 사치 풍조를 막기는커녕, 자신도 그 속으로 몸을 담갔다. 후궁의 수가 만 명을 넘어섰으니 서진은 통일과 함께 멸망의 징조가 드러난 셈이다. (진나라, 서진과 오나라, 삼국시대 말기) 위진남북조 시대, 서진의 은사隱士 노포魯褒의 전신론錢神論에서, "돈이야말로 신이다" 유송 시절의 유의경이 지은 세설신어에는 태치汰侈 편이 존재한다. 때찌,, 때찌 때찌 해줄 만한 낭비와 사치에 대한 내용인데 주인공은 무제의 외숙 왕개, 창업 공신 석포의 아들 석숭, 오나라 토벌에 공을 세운 왕혼의 아들로 진..
위진남북조00. 팔왕의난에서 수나라 통일까지 위진남북조시대를 위한 변명 中, 5호 16국이라고 불리는 시대는 팔왕의난 초기, 5부部 흉노의 맹주 유연이 한왕漢이라고 칭한 서진 건무 원년(304)부터 439년 북위의 세조 태무제의 화북 통일까지 135~136년 동안을 말한다. (수나라 통일 이전) 당나라의 역사가 이연수는 남사와 북사를 저술하면서 남사는 송 영초 원년에서 진陳의 정명 2년(589)까지 송, 제, 양, 진 4개 왕조의 170년, 북사는 북위 등국 원년(386)에서 수의 의령 2년까지 북위, 서위, 북주, 동위, 북제의 244년 동안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 연유해서 이 시대를 위진남북조시대라고 부른다. 팔왕의난, 5호 16국, 남북조, 이 명칭에 대해선 여지가 없습니다. 진 -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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